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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박정민, 학수 그 자체"...박정민 "심경변화 랩으로 표현"

■‘동주’이어 ‘변산’으로 재회한 이준익 감독·박정민 배우

누구나 지우고 싶은 흑역사 있어

진정한 치유는 과거와 마주하는것

이 영화로 네잎 클로버 쫓기보단

흔한 세잎클로버서 행복 느꼈으면

영화 ‘변산’의 박정민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M영화 ‘변산’의 박정민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M



영화 ‘변산’을 색으로 규정한다면 단연 노을빛이다. 햇볕 쨍한 청춘도, 먹구름 가득한 청춘도 아닌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현실의 청춘이지만 그 자체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야기다. 청춘을 단순히 미화하거나 불만을 늘어놓는 대신 가만히 마주하도록 관객의 손을 잡고 이끄는 이는 배우 박정민(31). 지난 1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피아니스트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던 그가 이번엔 과거를 지우려다 과거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된 래퍼 학수를 연기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이끈 이는 충무로 대표 이야기꾼 이준익(59) 감독. 영화 ‘동주’(2016)에 이어 2년만의 재회다. 윤성현 감독의 영화 ‘파수꾼’(2010)에서 박정민의 진가를 알아본 이 감독은 그에게 ‘독립영화계 송강호’라는 별명을 붙여줬던 인물. 이번에는 첫 원 톱 주연 영화로 박정민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박정민과 이 감독을 각각 만났다. 이 감독은 ‘변산’을 통해 박정민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졌고 박정민은 이 감독의 믿음 덕분에 어깨에 힘 빼고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 ‘변산’의 이준익 감독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영화 ‘변산’의 이준익 감독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박정민은 놀라운 매력을 지닌 배우예요. ‘동주’를 찍을 때 내 눈을 의심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촬영 현장에 들어서는데도 ‘송몽규’가 걸어 들어오고 촬영 마칠 때도 ‘송몽규’가 걸어나가더군요. 이번 영화 촬영 중에도 박정민을 만난 날은 하루도 없어요. 매일 학수 그 자체였지. 랩부터 춤, 연기, 사투리까지 박정민의 깊은 매력을 영화에 온전히 발현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독으로서 뿌듯합니다.”(이준익)

‘변산’은 뮤지컬 영화는 아니지만 주인공 학수의 심경 변화를 랩으로 풀어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감독은 “과거에는 사설이나 시를 통해, 최근까진 록을 통해 젊은이들의 말과 생각을 전했다면 요즘은 랩이 대세가 됐더라”며 “처음엔 단역배우였던 학수를 래퍼로 고쳐 썼다”고 귀띔했다. 랩 가사가 영화의 서사와 확실한 연결고리를 지니고 영화의 지지대 역할을 한 데는 박정민의 역할이 컸다. 3년간의 연재글을 모아 산문집 ‘쓸만한 인간’(2016)을 출간하기도 했던 그는 이번 영화에서 총 7곡의 랩 가사를 직접 썼다.

“랩을 소화하는 것조차 벅차서 처음엔 가사를 쓰겠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학수 마음은 제가 잘 아니까 랩 작사를 맡은 프로듀서 얀키에게 학수의 심정이나 시나리오 상에 드러나지 않은 뒷이야기들을 적어서 주기로 했죠. 그런데 막상 써내려가다 보니 가사가 되는 거예요. 저 혼자 가사를 쓰고 녹음해서 얀키와 감독님에게 들려줬더니 이대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박정민)

영화 ‘변산’의 김고은과 박정민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영화 ‘변산’의 김고은과 박정민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김세경 작가가 썼던 두 줄짜리 시구(내 고향은 폐항//내 고향은 가난해서/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에 매료돼 메가폰을 잡게 된 이 감독에게도 박정민이 써내려간 랩 가사는 큰 울림을 줬다. 이 감독은 “이전에는 집단과 개인의 관계설정으로 개인의 세계관을 구축했다면 이제는 개인과 개인의 소통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해가는 시대고 그 소통의 주요한 매개체가 랩”이라며 “기성세대도 학수의 랩을 귀담아 듣고 가사를 곱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막도 큼지막하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인물들은 고향에 강한 애착을 느끼거나 강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감독은 ‘변산’을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로 가두지 않았다. 이 감독은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고 대다수는 과거를 지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치유는 과거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며 ”이 영화는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좇을 게 아니라 흔하디 흔한 행복의 세 잎 클로버를 찾아보라고 넌지시 권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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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역시 학수의 금의환향 콤플렉스나 고향에 대한 환멸을 내면화하기 위해 그의 과거를 마주했다고 한다. 충북 청주 출신이지만 박정민이 떠올린 마음의 고향은 공주. 엄격한 기숙형 고등학교에서 공부보다는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단편영화를 찍었고 그런 그와 친구들을 선생님과 다른 아이들은 ‘칠거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2006년 고려대 인문학부에 입학했지만 영화감독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자퇴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했고 이후엔 연기가 하고 싶어 연기과로 전과했다.

“뭘 찍고 싶은지 진지한 고민도 없으면서 그냥 폼나게 영화 찍겠다는 열망이 강했던 시절이었어요. 워낙 공부만 시키는 학교였으니 선생님들 눈에는 제가 괴짜였겠죠. 지금은 선생님들에게 연락도 오고 칭찬도 듣지만 아직도 학교에 갈 자신은 없어요. 이게 금의환향 콤플렉스 아닐까요.”(박정민)

이 감독과 박정민이 묘하게 닮은 지점이 있다. 바로 어제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감독은 “나의 삶의 목표는 과거에 했던 것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는 것이고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며 “‘동주’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치느냐가 이 영화가 가야할 길이었다”고 털어놨다.

박정민 역시 ‘박수꾼’의 백희도 ‘동주’의 송몽규도 아닌 학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연기인생에서 동어반복은 없는 탓이다.

“영화를 찍고 나면 나만의 오답노트가 생겨요. 맞춘 것보다 틀린 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거죠. 이미 보여준 건 피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매번 한 테이크씩 털어내는 거죠. 누구처럼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박정민 그 자체여야 하고 아직은 그걸 찾아가는 중이죠.”(박정민) 4일 개봉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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