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남편을 돌로 내리쳐 죽인 아내에게 징역 4년이 확정됐다. 아내는 37년 결혼생활 동안 칼로 찔리기도 하는 등 가정폭력에 시달렸다며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성단체들은 이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법을 도입해야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지난달 28일 살인죄로 기소된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남편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무시했다. 화가 난 남편은 귀가해 옷을 갈아입는 김씨의 머리채를 잡아 넘어뜨리고 유리잔을 집어던지는 등 폭행을 가했다. 오랜 원망의 감정이 북받친 김씨는 2.5~3㎏짜리 장식용 돌 2개로 남편의 머리 등을 10회 이상 가격했고 남편은 결국 사망했다.
김씨는 결혼 기간 37년 내내 칼에 찔리고 가스통으로 가격당하는 등 폭력에 시달렸다며 정당방위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해 당시에도 기억이 정확지 않으나 남편을 죽이려는 생각까지는 추호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1·2심은 “(김씨의 살인 행위는)사회통념상 방위 행위로서 한도를 넘은 것이 분명한 행위는 정당방위는 물론 과잉방위로도 볼 수 없다”며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모처럼 술을 마셨는데 두들겨 패서 화가 많이 났다”며 분노감만 표현할 뿐 남편에 대한 공포감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도 정당방위로 볼 수 없는 이유로 지목됐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그러나 김씨를 변호한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대표 이명숙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센터 관계자는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피학대여성 대부분이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이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폭력에 노출되면 순간적으로 배우자를 살해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또 “이들을 살인자로 단죄할 것이 아니라 사건의 경위, 동기, 이들의 심신상태를 구체적으로 살펴 정당방위나 심신미약, 심신상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호주 등 해외 입법례처럼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가족 구성원이 가해자를 살해할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