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전 정무비서 성폭력 혐의에 대한 첫 공판에서 검찰과 피고인이 위력의 존재와 행사 여부를 두고 맞붙었다. 검찰 측은 피고인이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던 상황과 분위기가 위력을 형성했다고 주장했고 피고인 측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위력으로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면서 공방을 펼쳤다.
서울서부지법은 2일 오전 11시 형사합의11부 조병구 부장판사 심리로 안 전 지사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공판기일은 공판준비기일과 달리 피고인에게 출석 의무가 부과되는 본격적인 재판 절차다. 이날 공판에서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공소장을 낭독하는 모두절차와 서증조사(문서에 대한 증거 조사)가 진행된다. 안 전 지사는 전 정무비서 김지은 씨를 간음하고 강제추행한 혐의(형법상 강제추행·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성폭력특별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로 지난 5월 11일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개정 직전 짙은 남색 정장을 입고 법원에 들어선 안 전 지사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피해자가 방청 온다는데 법정에서 얼굴 보면 어떨 거 같냐”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하지 않고 입장했다. 재판 내내 고개를 눈을 감고 푹 숙이고 있었으나 확연히 탄 피부가 눈에 띄었다. 피해자 김지은 씨는 예고 없이 법정을 찾아 방청석 첫 줄에서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재판을 방청했다. 80여 석의 방청석은 일반 시민들과 취재진으로 꽉 찼다.
검찰 측은 공소사실을 낭독하면서 사건을 “명백하고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고 정의했다. 이어 “당시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피해자에 대해 가지는 지위가 막강하다”라며 “정무비서는 모든 일정을 동행하며 공사를 불문하고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피고인의 말 한마디에 직위를 잃을 수 있는 극도로 비대칭적인 위치였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은 안 전 지사가 이 같은 피해자의 지위를 악용해 맥주·담배 같은 기호식품을 주문한 후 불러들여 간음과 추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은 이에 대해 “성관계는 있었으나 위력이 존재했다거나 행사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피고 측 대리인 오선희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는 “피해자는 장애인도 아니고 미성년자도 아닌, 혼인 경험이 있는 고학력자 여성으로서 주체적이고 결단력 뛰어난 사람”이라며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약하는 위력이 어떻게 행사됐고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맞섰다.
검찰은 ‘인분 교수 사건’을 예시로 들며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면서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전형적인 권력형 범죄 가해자의 사고방식”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검사가 구체적 범행 내용을 낭독할 때는 방청석에서 조그맣게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재판부는 “권력과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이 없어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라면서 “이 사건에서 ‘위력’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쟁점을 정리하면서 모두절차를 종료했다.
재판에 앞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는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는 오전 9시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앞에 모인 30여 명의 공동대책위 활동가들은 “국가가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가해자는 처벌한다는 상식적인 법의 집행과정과 결과를 보여달라”라며 “정의로운 판결이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