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단추

- 이규자作

관련기사



이른 아침


깔깔한 입에 밥알을 씹고

약 한 봉지를 털어 넣고 옷을 입는다

와이셔츠 단추를 잠그며 시작되는

남편의 하루

수십 년 똑같은 모습으로 거울 앞에서

땀에 흠뻑 전 단추를 잠그고 푼다

첫 단추와 둘째 단추는 딸들이 매달려 있고

셋째 단추에는 아들이

맨 아래에는 내가 있다

여분으로 보조 단추마저 달고 다니는

가장의 무게

오늘도 다섯 개의 밥그릇을 매달고

출근을 한다

정년을 코앞에 둔

늘어진 나이가 불안하여

헐렁거리는 넥타이를 다시 조이며




수십 년 한결같이 새벽 쌀 씻어 밥 짓고, 후줄근한 셔츠 빨아 빳빳하게 다려놓고, 현관 앞 구두 솔질해 바로 놓아 주는 당신. 바깥으로 나갈 때 속마음 단속하느라 여민 단추, 집에 돌아오자마자 풀어헤쳐 속살조차 내놓을 수 있는 건 당신 덕분이지. 세상엔 조아릴 일도 있었고, 핏대 올릴 일도 있었지. 목젖까지 단추 하나 더 채우기도 했고, 소매 단추 풀어 젖히고 드잡이 질 하기도 했지. 상처 없는 영광이 어디 있겠수. 우리 가족 다섯 개의 밥그릇은 나의 훈장이요. 두렵고도 설레고, 무겁고도 뿌듯한 게 인생 아니겠수?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