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10대 주력업종 정밀진단 ② 반도체]기술력 뛰어나지만 D램·낸드에 안주...'포스트 메모리' 키워야

■반도체 SWOT 분석

메모리 호황 불구 국내 부품·장치산업 낙수효과 적어

정부 지원 감소에 R&D인력난 겹쳐 생태계 허약해져

자율주행·5G시대 맞아 반도체 수요 증가 등은 '기회'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지난 1983년에 시작됐다. 당시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일본 도쿄에서 D램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그로부터 35년이 흐른 지금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정상에 서 있다. 과감한 설비투자, 최고의 인재 확보 등을 바탕으로 메모리 분야에서 발군의 역량을 발휘한 결과였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사상 유례 없는 슈퍼사이클은 한국의 독주에 든든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다. 중국은 매섭게 추격해오고 메모리반도체에 치중한 나머지 신수종 품목도 보이지 않는다. 한때 국내 산업 중 산관학 연계가 가장 완벽한 업종으로 불렸던 반도체 생태계마저 인력난 등으로 허물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송용호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메모리 시장의 절대 강자지만 존재감 없는 비메모리반도체, 허약한 전후방 산업, 부족한 연구개발(R&D) 인력 등 반도체 생태계는 오히려 허약해지고 있다”며 “특히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등 미래 기술 선점에서도 밀리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D램 73%, 낸드 47%’ 점유율 속 ‘포스트 메모리’ 없어=반도체 종주국인 미국, 먼저 산업으로 키워낸 일본을 누른 한국의 기세는 메모리 시장 점유율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올 1·4분기 D램익스체인지 기준으로 D램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72.8%(삼성전자 44.9%, SK하이닉스 27.9%), 낸드플래시는 46.8%(삼성전자 37%, SK하이닉스 9.8%)에 이른다. 지난해 말 대비 D램은 1.9%포인트, 낸드는 2.3%포인트 빠졌지만 점유율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만 올해 말 32단 낸드를 양산하는 것과 견주면 낸드는 우리 업체가 4년, D램은 그보다 더 격차를 보인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초격차전략 유지가 가능한 기술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보면 문제점도 적지 않다. 당장 수요처가 중국에 편중돼 있다. 올 5월의 경우 전체 수출물량 109억달러에서 75억달러가 중국으로 갔다. 현실적으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으로 메모리칩이 몰릴 수밖에 없다고 해도 중국이 메모리 시장에 진입했을 때의 타격은 염두에 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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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반도체 산업의 불균형은 심각하다. 반도체 시장의 75%가량을 차지하는 비메모리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3%(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대만(6.9%), 중국 (4.1%)에도 밀린다. 업계의 한 임원은 “주문이 쇄도해 없어서 못 파는 메모리지만 언젠가는 시장이 꺾인다”며 “반도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포스트 메모리를 준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부실한 전후방 산업, 엔지니어 부족 심각=메모리가 초호황을 보이지만 국내 부품·장치산업의 낙수효과는 기대보다 약하다. 해외 업체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 산업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3.5%(2016년 기준) 수준이다. 메모리칩의 원재료가 되는 웨이퍼만 해도 국내 기업이라고는 SK실트론 정도밖에 없다. 업계의 한 실무자는 “삼성·SK가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해도 과실은 해외 업체가 가져가는 구조”라며 “산업이 업그레이드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생태계가 허약해지는 데는 정부 책임도 크다. ‘반도체=대기업’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R&D 지원을 계속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R&D 신규 예산은 2014년 189억원에서 지난해 98억원으로 축소됐다. 범위를 넓히면 전자·정보 관련 예산은 같은 기간 1,073억원에서 351억원으로 급감했다. 협회의 한 임원은 “정부의 지원 감소가 반도체 전공 교수 및 고급인력 배출 감소, 더 나아가 산업현장의 인력난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전했다.

◇4차 산업혁명 ‘기회’, 중국 변수 ‘위협’=사물인터넷(Iot), AI, 클라우드, 자율주행, 5G 등은 모두 데이터 폭증을 유인한다. 메모리가 4차 산업혁명의 총아로 불리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면서 칩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며 “반면 반도체 기술 고도화로 설비를 늘려도 과거만큼 공급이 빠르지는 않기 때문에 공급과잉 우려도 예전보다 덜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와 반독과점 조사에 나설 정도로 중국의 견제가 노골적인 점은 위협요인이다.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뗐다가 최근 중국 다롄에서 차세대 3D낸드를 생산하고 있는 인텔의 예에서 보듯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경쟁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업계의 한 임원은 “중국이 낸드를 양산하면 애플·화웨이 등 스마트폰 업체들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가격 하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서 환경·안전·보건 분야의 규제가 강화되는 점, 미중 간 통상분쟁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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