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미래혁신그룹

박종복 SC제일은행장

박종복 SC제일은행장



SC제일은행은 올해 초부터 ‘미래혁신그룹’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20대나 30대의 젊은 직원들이 조별로 주제를 정해 업무 개선 방안이나 모범기업 사례 등을 연구해 경영진 앞에서 직접 발표하고 함께 논의한다. 어느 회사에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싱크탱크 조직이 있겠지만 필자가 은행장으로 미래혁신그룹에 기대하는 역할에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

보통 경영진의 오랜 경험과 연륜은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 창의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은행원들은 오랫동안 선배들이 축적해놓은 경험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길들여져왔다. 새로 나온 예금 상품을 판매할 때나 신용대출 리스크를 측정할 때, 직원들에게 인사 발령을 낼 때도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해야 사고가 나지 않고 효율성도 높아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원들이 퇴직하고 사회에 나가면 반은 통닭을 튀기고 반은 사기를 당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생겼다. 수십 년 동안 남들이 쌓아놓은 경험에 자신의 생각을 짜 맞추는 연습을 했기 때문에 단순한 반복 업무에는 능하지만 경험 데이터를 조금만 벗어나면 판단에 미숙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객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보수적인 직업의 특성상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선택된 불가피한 기업문화임을 필자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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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기대지 말고 변화하는 세상에 직접 맞닥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것은 얼마 전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고 나서다. 20여년 전 인터넷 서점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온라인으로 책을 검색하며 책값을 결제하는 편리한 시스템’ 정도로 생각했고 최근까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실제로 인터넷 서점은 놀라울 정도로 변모를 거듭했다. 과거의 검색이나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독자가 관심 있어 할 만한 책을 추천하며 다른 독자들의 서평도 보여준다. 또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책 대여뿐 아니라 연관된 여행지와 옷까지 추천해준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다. 코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변화를 경험과 연륜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해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이유로 최근 미래혁신그룹과 함께 논의하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젊은 직원의 발표 내용이 어설프고 허점이 많을수록 오히려 굳어진 사고가 좀 더 유연해지는 느낌이다. 낡은 생각의 틀은 ‘지금까지 했던 대로 해야 아무 탈이 없지’라며 계속 과거에 머물 것을 권하고 유혹한다. 그러나 옳았던 것이 순식간에 틀린 명제가 돼버리는 빠른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은 세끼 식사와 같다. 미래를 바꾸는 것은 어제까지의 연륜이 아니라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새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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