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개인의 서정시대는 완전히 지나간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고통에 눈이 멀어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기는 완전하게 지나갔고, 이제는 타인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인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올해로 소설을 쓴지 22년 째, 한국 대표 중견 작가로 자리 잡은 조경란 작가가 일곱 번째 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를 냈다.
신작 출간을 맞아 최근 서울 중학동 서울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난 조 작가는 “작가로서 재정비하는 기분으로 이번 소설집을 냈다”며 이전 작품과의 차이점에 대해 “지금까지는 본인이나 본인의 가족 이야기에 오랫동안 집착해왔지만 이제는 난민 문제나 이웃의 문제, 지역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소설집에는 몰랐던 사람들끼리 서로 어울려 살아가려는 내용이 담겼고 조 작가 본인의 지역구에서 해결됐거나 해결되지 않은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룬 경장편 소설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프레임 안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을 더 열심히 관찰하고, 의미 있게 만들고, 같이 살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싶다”며 “살아남는 작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노력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본인·가족에만 집착
이제는 난민·이웃 등 일들에 관심
작가로서 재정비 기분으로 출간
몰랐던 사람들 알아가는 8편 묶어
이번 소설집은 조 작가가 2013∼2017년에 쓴 8편의 단편을 묶은 것이다. 제목을 원래 ‘모르는 사람들끼리’로 하려고 했던 만큼 몰랐던 사람들끼리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표제작은 서른일곱 살로 ‘아버지’의 양자인 ‘인수’가 가사도우미 ‘경아’와 함께 지내며 진짜 가족이 돼 가는 이야기다. 인수는 그녀에게 그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모든 문제를 돈 봉투로 해결하려는 아버지의 고루한 삶의 방식마저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얼떨결에 광장의 집회 인파에 섞이게 된 청년 ‘훈’의 이야기를 담은 ‘11월 30일’, ‘오랜 이별을 생각함’, ‘김진희를 몰랐다’, ‘492번을 타고’ 등이 실렸다. 조 작가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서 밥 먹고 차 한잔 하고 돌아가서 내일을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작가가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은 것은 ‘11월 30일’이다. 그는 2013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만큼 젊은이들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11월 30일’의 주인공 ‘훈’도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본 한 청년의 뒷모습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그는 “2016년도 광화문에서 사람들이 운집된 기억들, 무언가를 시도해보려고 했던 기억들이 강렬하게 남았다”며 “1년에 단 한 번뿐인 11월 30일 같은 날들이 모여서 변화를 이뤄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1년에 단편 한편은 무조건 발표
어떤 슬럼프 와도 이겨내게 했죠
어느덧 일곱 번째 단편집을 낸 그의 다작 비결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1년에 단편 한 편은 무조건 발표하자는 다짐으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고, 그렇게 써내려간 작품들이 모여 어느덧 일곱 번째 단편집이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작가생활 10년 정도 됐을 때 소설이 뭐지? 하며 갑자기 캄캄해지는 상황이 됐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어렵게 단편집을 내고 좋아졌는데 그 이후로 아무리 어떤 슬럼프가 와도 단편 하나는 꼭 쓰자는 약속을 지키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