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기자의 눈] 국가와 기업, 망신주기와 법

조민규 산업부 기자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에서 촉발된 대한항공 사태가 석 달째 진행 중이다.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음료수를 뿌린 조현민씨의 갑질은 어머니 이명희씨의 폭언·폭행으로 불똥이 튀었고 필리핀 가정부 불법고용, 밀수, 사무장 약국 운영 의혹으로 일파만파 번졌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의혹에 검찰과 경찰은 물론 관세청과 국세청·교육부까지 무려 11개의 기관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압수수색만 14번, 조양호 회장을 포함해 사주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4번이다. 이 기간에 조 회장과 부인 이씨, 딸 현아·현민씨는 10차례에 걸쳐 포토라인에 섰다. 갑질에 분노한 국민들 대다수가 고개를 숙인 채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의 모습에 통쾌해했다. 적어도 국민 감정적 차원에서 전례 없는 사정기관들의 대한항공 물어뜯기는 성공했다.


다만 법적 관점에서 냉정하게 돌아보면 성과는 초라하다. 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조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 사실들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조현민씨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이명희씨에 대한 검찰의 영장 청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구속영장 기각이 곧 죄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피의 사실에 대한 사정기관의 혐의 입증이 불충분하거나 구속 수사할 만한 사정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조 회장을 포함한 이들 사주 일가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는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 수사 결과를 토대로 한 법의 심판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어지고 있는 무차별적인 망신 주기는 돌이켜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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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날아가는 국적 항공사의 이미지는 국가 이미지와 연결된다. 시가총액이 150조원에 달하는 독일의 SAP보다 규모가 10분의1에 불과한 루프트한자를 아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이유다. 해외여행 계획을 짤 때 어떤 항공사를 이용할지는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다. 항공사들의 취항 여부나 횟수가 특정 국가에 대한 여행 수요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내년이면 세계 항공 업계의 유엔총회로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가 대한항공 주관으로 서울에서 열린다. 조 회장에 대한 망신주기는 더 이상 안된다. 국제행사를 망치고 국가 이미지까지 훼손할 수 있다. /cmk25@sedaily.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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