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꼭 저래야 하나 싶을 정도예요. 낯 뜨거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지난달 28일 밤 서울 한강공원 뚝섬지구. 이연화(68)씨는 꽉 껴안고 진한 키스를 나누는 젊은 커플을 보자 같이 나온 손자 얼굴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이씨는 “강바람을 쐬며 무더위를 식히고자 자주 나오는데 지나친 애정행각에 민망할 때가 많다”며 “아이가 볼까 싶어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난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날 밤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을 찾은 직장인 김연후(32)씨는 취객들의 고성과 난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김씨는 “더위도 쫓을 겸 산책이나 하려고 나왔는데 온통 술판”이라며 “오히려 불쾌감만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면서 한강공원·경의선숲길 등 도심 속 공원을 찾아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음주·소음·쓰레기 등 고질적인 휴가철 문제도 제기되고 있지만 ‘피티켓(피서지에티켓)’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시민 모두가 찾는 안식처인 만큼 주변을 배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법으로 설치된 노점과 좌판, 앰프를 통해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버스킹(거리공연)’, 그늘막이나 텐트를 쳐놓고 벌어지는 낯 뜨거운 남녀의 애정행각 등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주취자들의 고성과 버스킹의 소음에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다. 경의선숲길 근처 원룸에 거주하는 김진석(28)씨는 “밤마다 이어지는 소음과 추태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여름철을 맞아 더 시끄러워질 텐데 벌써부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시가 국정감사 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버스킹 민원 신고 건수는 지난 2013년 10건에서 연평균 72% 수준으로 급증하더니 지난해 8월 기준으로만 77건을 기록했다. 5년 사이 8배가 증가할 정도로 시민들의 불만은 크게 늘고 있다.
‘불’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마다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도 문제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에 따르면 11개 한강시민공원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한 달에 약 600톤에 이른다. 여의도공원에서만도 하루 5~7톤의 쓰레기가 배출된다. 특히 여름철에는 행락객이 남기고 간 음식물 쓰레기가 쉽게 부패하는 바람에 악취 때문에 공원을 찾은 이들의 발길을 돌리게 한다. 이씨는 “한강공원은 아침마다 폭격을 맞은 것처럼 쓰레기로 가득하다”며 “음식물 쓰레기 냄새와 그것을 쪼아 먹는 비둘기떼를 볼 때면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매년 피서철마다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서울시 한강공원 보전 및 이용에 관한 조례에 따라 휴식 중 발생한 쓰레기를 수거하지 않으면 과태료 10만원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쓰레기 투기에 대한 과태료 부과 건수는 2015~2016년 0건에 불과했고 지난해에도 8건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주차위반, 오토바이 통행, 흡연, 음주 등에 총 6,592건의 과태료를 부과한 것과 대비된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서울시는 한강공원 내 쓰레기 처리 인원과 장비를 늘리고 오는 10월까지 단속반 239명을 투입해 쓰레기 투기를 포함한 공원 내 무질서행위를 집중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서울시는 서울숲·남산·월드컵공원 등 직영 공원 22곳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해 단속 중이지만 여전히 음주와 소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법 집행과 시민의식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력한 법 집행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며 “시민의식을 바꿀 수 있는 캠페인이 더불어 진행돼야만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