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낙태죄 논란 ‘생명 대 생명의 구도’서 접점 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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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 5명의 임기 만료가 다가옴에 따라 지난 5월24일 공개변론 이후 핫이슈로 떠오른 낙태죄 폐지 논란에 대한 헌재의 최종결정이 이르면 다음달 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재판관 과반수의 9월 임기만료 전에 낙태죄 등 미뤄졌던 주요 사건에 대해 집중심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여성계도 광화문 시위 등 뜨거운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다. 헌재는 지난 2012년 낙태죄 헌법 소원 심판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진성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다수가 인사청문회를 통해 낙태죄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여서 가열되는 찬반 논란 속에서 이번엔 다른 결정이 나올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 엄마 삶부터 살려야” vs “태아 생명권 보장… 낙태는 태아 죽이는 행위”


형법 269조 1항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270조 1항은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한 때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 5월 헌재 공개 변론에서는 이 형법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서 청구인 측과 법무부 등 이해관계인이 뜨거운 공방을 주고받았다.

청구인측은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뒷전일 수 없는, 헌법상의 기본권임을 강조했다. 낙태죄 조항이 임신부의 자기결정권과 함께 평등권과 건강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임신으로 일과 학업, 꿈을 포기하게 된다면 그 여성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반면에 법무부 등 낙태죄 폐지 반대 측은 태아도 생명체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생명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 의무를 고려할 때 낙태 허용범위는 모자보건법 개정이라는 입법권자의 재량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고 낙태죄 자체를 위헌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하며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태아 생명권에 아무런 보호조치가 없어져 또 다른 위헌적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낙태죄 실효성을 놓고서도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청구인 측은 연간 낙태 건수는 17만건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실제 낙태죄로 기소되는 건수는 연간 10여건에 그쳐 사실상 낙태죄가 사문화된 현실을 지적했다. 낙태죄 폐지 반대 측은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할 것”이라며 형사처벌 조항이 낙태를 자제하는 심리적 효과를 내는 등 적극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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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시술 때 ‘선택 유산’은 합법인데… “낙태 허용범위 확대” 목소리 커진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 구도에서 보면 낙태죄 논란은 이미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된다. ‘낙태’ 대신 ‘임신중단’이라는 객관적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생명권’ 앞에서 ‘자기결정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낙태의 기로에 선 여성들이 낙태를 하려면 ‘고비용 고위험’에 내몰리게 되고 출산을 선택하게 되면 ‘사람답게 제대로 된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강간, 유전 질환 등 예외적으로만 허용된 법 조항 때문에 낙태를 하기 위해선 ‘제한된 범법행위의 길’을 찾아 많은 비용과 건강상의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사회의 시선은 절대 곱지 않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상황에서 산모와 태아는 사회적 외면을 당하고 심지어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 취급을 당하는 사례가 부지기수인 게 현실이다.

현실의 법적용과 처벌에서도 모순된 상황이 발행하고 있다. 시험관아기, 인공수정 등 난임 치료시술로 둘 이상의 태아가 임신되는 경우 임신 유지를 위해 태아 중 일부를 인공 유산시키는 ‘선택 낙태’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난임 시술에 의한 임신이란 점만 다를 뿐 낙태와 다를 바 없는데 ‘선택 낙태’는 합법적으로 할 수 있고 일반 낙태는 불법으로 규정돼 처벌받는다. 복지부는 지난해 난임 시술에 건강보험 적용을 시작하며 ‘선택 유산’을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비보험으로 할 수 있게 길을 터줬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선택 유산 등 난임 시술에 정부가 수백억을 지원하면서 낙태를 처벌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제 낙태죄 논란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 아닌 우선권을 설정할 수 없는 ‘생명 대 생명의 구도’에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진성 헌재소장도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조화시키는 방법이 있다”며 “미국 연방대법원이 했듯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른 재판관들도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임신 초기 단계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태아와 여성의 ‘생명 대 생명의 구도’라는 접근으로 법과 현실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해법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이정법기자gblee@sedaily.com

이정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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