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서울 지하철을 운행하며 100만㎞를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상사와 동료·시민들 덕분입니다. 초심을 지켜오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서울 지하철에서 역대 네 번째이자 2호선에서는 첫 번째로 100만㎞ 무사고 기관사가 된 전기욱(59) 기관사는 지난 1983년 입사 당시의 마음가짐으로 매일 기관사실에 들어간 것이 무사고 기록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100만㎞는 지하철로 지구에서 달까지 1.3회 오가거나 서울에서 부산을 2,538회 왕복한 거리다.
전 기관사는 서울교통공사 입사 당시 기관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1983년 입사한 그는 입사원서를 내기 전 꿈을 꿨다. 당시 기차 객실에 앉아 있던 그가 갑자기 기관실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다. 꿈에서 깬 전 기관사는 기차 또는 전철을 운행하는 것이 앞으로 자신의 직업이라고 생각해 서울지하철공사(현 서울교통공사)에 지원해 합격했다.
그는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기관실에서 한동안 근무하다 다른 부서로 옮겨 나처럼 계속 기관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며 “순환보직 차원에서 기관실을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이곳만 고집했는데 이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기관사가 35년 동안 기관실에서 순탄하게 근무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안전문(스크린도어)이 있어 철로로 뛰어드는 사고가 적지만 과거에는 철로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그도 자신의 과실은 아니지만 철로 사고를 경험해 트라우마를 겪었다.
“1990년대 초반 2호선의 한 역사에서 정신이상자가 전철을 기다리는 승객을 철로로 밀어버리는 사고가 났어요. 당시 제가 그 열차를 몰았는데 눈앞에서 승객이 사고를 당했고 너무 힘들었죠.”
서울교통공사는 운전 중 사상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기관사의 과실이 없으면 운전 무사고로 본다. 비록 당시 일이 전 기관사의 과실은 아니지만 그는 엄청난 충격으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 기관사는 “정년퇴직하는 날까지 지하철을 안전하게 운행하겠다는 생각으로 버텨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입사 때부터 근무 전날과 출근길에는 항상 ‘안전운행’을 위해 기도하고 기관실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내년 12월 정년퇴직하는 전 기관사는 앞으로 타인을 위한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35년 동안 월급 한 번 안 밀리는 좋은 직장에서 도움을 받고 살았으니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도와야 할 것 아니냐”며 “내년에 정년퇴직하면 그동안 받은 것을 다시 베푸는 일로 남은 세월을 보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