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국 기업들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압박이 크게 고조되자 인민은행이 자금경색에 빠진 기업들에 대한 유동성 공급 확대 조치에 나섰다. 경제성장 둔화와 대미 무역전쟁의 여파로 디폴트가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자 중앙은행이 사실상 개입에 들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부채축소에 초점을 맞춰 ‘신중하고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펴온 인민은행의 통화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19일 블룸버그통신과 중국 제일재경에 따르면 전날 인민은행은 시중은행에 창구지도 형식으로 중기유동성지원창구(MFL)에 투입된 자금을 활용해 대출 및 회사채 투자를 확대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인민은행은 신용등급 ‘AA+’ 이하인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에도 투자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AA+’ 이하 등급은 ‘정크본드’로 인식되는 비우량채권으로 은행들이 통상 투자를 꺼린다는 점에서 인민은행의 이번 요구는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인민은행의 이번 조치는 올해 중국 회사채 시장이 크게 흔들리며 기업들이 대거 자금난에 몰리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국 기업이 상환하지 못한 공모채권은 이미 165억위안(약 2조7,600억원) 규모로 디폴트 규모가 사상 최대였던 지난 2016년(207억위안)의 80% 수준에 육박했다. 최근에는 상장사인 융타이에너지가 무려 114억위안 규모의 디폴트에 빠져 시장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는 올해 단일사례로는 가장 큰 규모로 회사의 총부채가 722억위안에 달한다는 점에서 디폴트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기업들은 금리가 바닥을 쳤던 2015~2016년에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 시스템 밖의 ‘그림자금융’을 이용해 공격적인 차입경영에 나섰다. 하지만 과잉부채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면서 중국 정부가 2016년부터 부채축소(디레버리징) 정책을 펴고 강력한 그림자금융 규제·단속에도 나서자 자금 조달이 점차 어려워졌다. 1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2016년 4.5%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7% 수준으로 뛰어오른 상태다.
이처럼 회사채 시장에 위기감이 번지는데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실물경제 악화 우려까지 커지자 그간 ‘신중하고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내세운 인민은행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인민은행은 올 들어 1월과 4월 한 차례씩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는 한편 MFL와 역레포(역환매조건부채권) 등 정책수단을 활용해 부분적으로 유동성을 추가 공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큰 틀의 통화정책이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왕이펑 중국 민생은행 연구원은 “인센티브로 기업 신용확대 회복을 꾀하고 그림자금융의 위축이 기업 금융에 부담을 주는 것을 막고자 한다”며 “이번 조치가 ‘완전한 정책 전환’을 의미할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