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휴가철이 시작됐다. 휴가라도 집에 머물며 주위를 둘러보고 집 안을 정리하겠다는 경우도 있다. 물론 휴가 하면 일단 직장과 집을 멀리 떠나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들린다. 어떠한 형식의 휴가가 되더라도 휴가를 보내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휴가라고 해놓고 회사와 e메일을 주고받는다면 직장을 휴가지로 옮겨온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간혹 휴가를 재충전 기회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재충전 비유는 돌아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일과 단절하지 못하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즉 휴가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일과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있다. 또 잠깐 일에서 떠난다고 하더라도 결국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가 휴가를 전보다 자유롭게 가게 됐지만 휴가 기간에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기 자신을 상상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휴가는 어디에 있더라도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에게 주목하는 시간으로 보냈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사람이 일을 하지만 일에 얽매이지는 않는 인간으로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신을 만나려면 전원만 켜면 인터넷에 접속되는 곳은 피해 갈 필요가 있다. 의식에서 아무리 인터넷을 하지 말아야지 해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웹서핑을 하고 게임을 하는 등 세상과의 접속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렇게 보면 노자가 말한 ‘나라의 규모를 작게 하고 인구를 적게 하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며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휴가의 모델을 찾을 수 있다. 노자는 소국과민을 말하고 제일 먼저 “아무리 효율이 뛰어난 도구가 있더라도 쓰지 말자(사유십백인지기이불용·使有什伯人之器而不用)”고 제안했다. 물론 노자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알 리는 없지만 오늘날 이 구절을 현대 문명의 총아와 견줘 이해할 만하다. 즉 휴가지에서는 스마트폰부터 텔레비전까지도 사용하지 않는 의도적 단절의 환경을 조성하고 자신과 가족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다음으로 “죽음을 소중하게 생각해 멀리 가지 않도록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집 밖을 나서지 말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노자가 말미에 “이웃이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라도 사람이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고 가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원행을 하지 말라는 맥락으로 보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이 구절에서 멀리 다니는 것이 생명의 보존과 관련된다는 점에 주목하면 안전한 휴가라면 꼭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읽을 필요도 없을 듯하다. 특히 오늘날 ‘지구촌’이라는 말이 상식이 된 상황에서 외국행을 먼 곳으로 떠나는 원사(遠徙)로만 바라보지 않아도 좋다. 휴가를 가 평소의 체력과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많은 곳을 다니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소국과민의 휴가와 크게 충돌하지 않을 듯하다.
노자는 또 “세분화되고 복잡한 언어 대신 문명의 초기에 새끼 매듭으로 의사소통하던 결승(結繩) 문자를 쓰자”고 제안하고 있다. 요즘 가족이더라도 관심사에 따라 언어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로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한 대화를 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결승 문자는 모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동의 언어로 바꿔 생각해볼 만하다. 그렇게 공동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끼리 평소에 몰랐던 점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많이 보고 즐기는 유형도 좋지만 세상과 접속하는 효율적인 ‘십백인지기(什伯人之器)’를 내려놓고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만나는 소국과민 유형의 휴가가 된다면 돌아와서도 활력과 의미를 찾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신체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는 자신의 세계를 찾는 선물을 받게 되고 나중에 그곳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