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파괴적 혁신’이다. 그 성공 여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2015년, 2016년에 ‘교육을 위한 새로운 비전’ 제하의 보고서 두 개를 냈다. ‘21세기 혁신·경쟁력·성장을 이끄는 핵심요소가 인재’라고 본 것이다. WEF의 ‘2016년 미래 고용보고서’는 노동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견하면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에 기반하되 인간 고유의 사회적 감성과 융합적 소양을 갖춘 전인적 인재의 교육을 역설했다. 그러나 교육 시스템이 노동 시장 수요에 대응하지 못해 곳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 주요국은 수학·과학교육 강화에 나섰다. 미국은 국민의 수학·과학 소양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프로젝트 2061’을 띄웠다. 영국과 핀란드는 코딩을 의무교육으로 도입했다. 코딩이 자연과학·기계·공학·수학·예술의 융복합적 기술이라 보기 때문이다. 일본·호주·싱가포르·중국·프랑스는 대학 입시에서 STEM 과목을 강화하고 있다.
인류지성사에서도 수학의 위상은 특이하다. “수학(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 기원전 3세기께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던 이집트 톨레미 왕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길이 없겠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이었다. ‘왕도’는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한 페르시아 제국이 3개월 걸리던 여정을 1주일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닦은 길이다. 유클리드의 ‘기하원론’은 2,000년간 최고의 수학 교재로 금속인쇄술이 발명된 후 성서 다음으로 많이 찍힌 책으로 기록된다. 13세기 라틴유럽에서 설립된 대학의 교양과목은 3학(문법·수사학·논리학)에 더해 4학(수학·기하학·음악·천문학)으로 짜였다. 수학 중시의 전통은 20세기 영국의 신사교육까지 이어졌고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더욱 심화하고 있다.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과 산업을 진흥하는 ‘사람’ 중심의 경제다. 정부는 올해 초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통해 세계 36위(2016년)인 수학·과학교육의 수준을 오는 2040년까지 15위로 끌어올린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교육부는 올해 두 차례에 걸쳐 ‘2021년 수능에서 기하·벡터를 제외한다’ ‘2022년부터는 확률·통계·미적분을 선택과목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어찌 된 일인가. 이미 2007년, 2009년, 2015년의 수학·과학 교육과정 개정에서 교과 난도를 하향하고 학습내용을 축소해 교육 위기는 심화하고 있었다.
요즈음 13개의 과학기술 관련 단체가 ‘2022 수능에서 수학·과학 바로 세우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이미 이공계 대학은 기초과목을 배우지 않은 학생들을 가르치노라 애를 먹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공계열의 대학 입시에서 기하와 과학Ⅱ 과목을 평가하지 않는 사례는 없다고 말한다. 과학기술계가 해당 과목 축소에 반대하다 보니 자칫 분야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혁신의 방향과 현실을 잘 아는 처지에 입 다물고 있을 수도 없다.
교육부가 수학·과학 과목을 축소하는 주된 근거는 학습 부담의 경감이다. 하기야 공부가 놀이와 융합되는 스마트 시대에 딱딱하고 어려운 과목의 수업이 인기 있을 리 없다. 우리 세대는 공부(工夫)란 어려워도 참고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원래 어원이 중국 ‘쿵후’에서 유래됐으니 무술을 연마하듯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능에서의 이들 과목 축소가 학생들이나 학부모에게는 오히려 반가울 수도 있다. 누군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하게 하려고 신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고언을 한다. 오로지 인재가 최고의 자산인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을 위한 공교육과정에서 필수 기초 교과목을 계속 축소하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학생들이 기초 소양을 쌓고 진로를 탐색하는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사·과학기술계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TED 강연을 보니 교사들이 만화로 수학을 가르치고 개그식으로 과학을 가르치는 실험정신이 신선하다. 정부는 과목 축소가 아니라 수학·과학교육의 ‘기술’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하는 등 새로운 접근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