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일주일 치 먹을거리를 사러 마트를 찾는 A씨는 지난 21일 과일 코너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장마가 끝나고 바로 뒤따른 폭염 탓에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1만8,000원 수준이던 수박 한 통 가격이 2만2,000원으로 올라서다. 수박뿐 아니다. 복숭아 가격도 올랐다. 3만원대였던 복숭아 1박스 가격은 4만원을 훌쩍 넘었다. A씨는 “과일·채소 등 신선식품 가격이 30~40%는 오른 것 같다”며 “지금도 무섭게 올랐는데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14년 만의 폭염과 최저임금 인상, 계속된 유가 상승세까지 겹치며 여름철 생활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무더위에 출하량이 감소한 과일·채소는 물론 육류까지 농축수산물 가격이 일주일 새 30~100%까지 올랐다. 가공식품·외식 업체도 원재료 가격과 최저임금 인상분을 반영한다며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는데다 원유(原乳)도 5년 만에 가격 인상이 예정돼 있어 음식료품 물가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의 연쇄효과…식당부터 음료까지 죄다 올라=2년 연속 최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로 결정되면서 프랜차이즈·식음료 업체가 들썩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한 국내 대형 커피전문점 B업체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0.9%로 결정된 후 커피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이 업체는 올해 최저임금이 16.4% 인상됐을 때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지만 내년에도 두 자릿수 인상이 계속되면 더 버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공식품·외식 업체들도 식품 원재료 가격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가격을 올리는 추세다.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식음료 업체들은 가공식품 가격을 최대 33.3%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뚜기가 ‘자른당면’을 포함한 총 16개 품목의 가격을 최대 27.5% 올렸고 1인 가구 소비가 많은 3분햄버거·3분미트볼 등 간편조리 제품도 200원씩 가격을 올렸다. 롯데·해태·크라운제과 등 제과 업체 3사도 가격을 11~33% 인상했다. 6월 한 달간 편의점에서 가격이 오른 품목은 30여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7월 들어서도 비슷한 흐름이다. 투썸플레이스는 이달 초 주요 디저트류의 가격을 평균 5%가량 인상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서비스 업종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등록된 전국 16개 시도의 올해 1월 미용실 평균 가격은 1만4,750원에서 6월 1만5,070원으로 2.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과 대전은 각각 올해 1월 대비 2,167원과 1,000원 올라 상승 폭이 컸다. 목욕값 역시 전국 평균 5,895원에서 6,086원으로 3.1%(191원) 올랐다.
◇폭염 여파에 시금치·배추 등 채소 무더기 급등=물가를 가장 가파르게 끌어올린 것은 한낮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다. 짧은 장마와 태풍 ‘쁘라삐룬’에 이어 14년 만의 폭염까지 겹치면서 채소 가격부터 급등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달 20일 기준 배추 한 포기 소비자가격은 4,475원으로 일주일 사이에 25.5%나 뛰었다. 애호박도 840원에서 1,076원으로 28.1% 올랐고 오이는 696원에서 751원으로 7.9%, 양배추는 2,443원으로 12.5% 올랐다. 감자와 고구마도 각각 18%, 47% 올랐다. 도매가격의 상승세는 더 무섭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20일 기준 배추 한 포기 도매가격은 3,727원으로 한 달 전보다 무려 174.5% 올랐다. 시금치는 4㎏ 기준 2만1,554원으로 182.8%, 청상추도 4㎏에 1만8,369원으로 147.1% 올랐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여름 과일인 수박은 1만7,860원으로 이달 상순보다 42.6%, 참외도 10㎏에 2만1,250원으로 51.3% 뛰었다.
축산물 가격도 폭염의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소고기 등심 1등급(100g) 소비자가격은 1주일 새 6,975원에서 8,207원으로 17.7%, 돼지고기 삼겹살(100g)은 2,554원에서 2,663원으로 4.3% 올랐다. 닭고기(육계 1㎏) 도매가격도 1,653원으로 한 달 전에 비해 45.5% 뛰었다. 장마 후 계속된 폭염으로 이미 79만마리가 넘는 가축이 폐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육류 출하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보다 28%나 많은 가축이 폐사했다.
◇휘발유·경유, 연중 최고가격…“차 몰기 겁난다”=연중 최고치를 찍고 있는 휘발유·경유 등 석유류 가격도 가계와 기업에 부담을 얹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이달 셋째 주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한 보통 휘발유 가격은 ℓ당 1,611원60전으로 일주일 전보다 1원70전이 올랐다. 3주 연속 오름세가 계속된 것은 물론 2014년 12월(넷째 주 1,620원) 이후 3년 반 만에 최고치다. 전국에서 가장 가격이 높은 서울은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이 1,696원70전으로 이미 1,7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서울만의 일은 아니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C씨는 “지방인데도 알뜰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 가격이 1,700원에 육박해 눈을 의심했다”며 “차를 몰고 다니기도 겁난다”고 말했다.
경유도 올해 들어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자동차용 경유는 ㎘당 1,412원60전으로 전주보다 1.8원 올랐다. 올해는 물론 휘발유와 마찬가지로 2014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경유는 생계형 화물차에 많이 쓰인다. 국제유가를 따라 주춤하는 듯했던 기름값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서민을 중심으로 교통비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6월 국내 석유류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0% 올라 14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때 교통비도 4.5% 오르면서 13개월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원유(原乳)도 인상…우유부터 아이스크림·치즈 도미노 인상 우려=국내 원유 수매가격도 오는 9월부터 ℓ당 4원 인상된다. 원유값이 오르는 것은 2013년 이래 5년 만이다. 이번 인상으로 우유가 주재료인 치즈나 요구르트 등 유제품은 물론 ‘카페라테’처럼 우유가 들어가는 커피 등 음식료품도 줄줄이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낙농협회와 유가공협회는 20일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 회의를 열고 올해 9월부터 반영할 원유 수매가격을 지난해보다 4원 인상한 ℓ당 926원으로 최종 확정했다. 유가공협회는 흰 우유 소비가 감소 추세라며 동결을 주장했지만 낙농협회는 비용 인상을 들어 가격 인상을 요구해왔고 결국 인상으로 귀결됐다. 원유 가격 인상으로 우유 가격도 오를 수밖에 없다. 2013년 원유 가격을 ℓ당 834원에서 940원으로 106원 인상했을 때 매일유업은 ℓ당 흰 우유 가격을 200원, 서울우유는 220원 올렸다. 스타벅스와 폴바셋 등 커피전문점도 우유가 들어가는 메뉴 가격을 올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흰 우유 사업에서 1위인 서울우유를 비롯해 매일과 남양유업 등 주요 업체들이 우유 소비자가격을 최소 ℓ당 50원 이상 올릴 것으로 본다”며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도 시행에 따른 인건비 급등, 각종 생산비 상승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유를 재료로 사용하는 가공유와 생크림·버터·아이스크림·커피 등의 제품들도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제신문이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등록된 과자·빙과류 43개 품목의 가격(6월 기준)을 분석한 결과 절반이 넘는 24개(55%) 품목이 올해 1월에 비해 가격이 10%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원재료인 우유 가격이 오르면 과자·빙과류 가격도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세종=빈난새·박형윤기자 박윤선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