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초 3선 서울시장의 기록을 세운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동산 정치’에 나선 모양새다. 세 번째 임기 초반부에 잇달아 여의도·용산 개발 구상을 언급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공개된 박 시장의 여의도·용산 개발 구상에 대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자 박 시장은 25일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처럼 돼야 한다”며 여의도 통합 개발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국토부의 고유권한인 ‘표준지 공시지가’ 결정권한을 시도지사에 이양해 달라는 공문을 박 시장 명의로 최근 보냈다. 서울시의 세수 확대는 물론 박 시장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본인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라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시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팟캐스트에 출연해 “여의도는 박정희 시대 때 한강 밤섬을 폭파해 나온 흙과 돌로 개발했고 그때 만들어진 아파트가 노후화돼 새로운 개발이 필요하다”고 여의도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종합적 가이드라인과 마스터플랜 아래 개발이 진행되는 게 좋다”며 ‘여의도 마스터 플랜’ 수립 배경을 설명했다. 싱가포르에서의 발언 공개 후 여의도·용산 집값이 요동친 것과 관련해서는 “종합적인 가이드라인과 마스터플랜 아래 여의도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가 어느 날 한꺼번에 다 개발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고 해명하며 개발에 상당한 기간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싱가포르에서 여의도 뿐만 아니라 용산 개발 구상도 함께 언급했던 것과 다르게 이날 발언은 여의도 개발에 초점이 맞춰졌다. 국유지가 포함돼 정부와의 협의가 필요한 용산보다는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여의도 개발에 더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면서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특히 2011년 이후 지난 임기 동안 도시계획 분야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임기에는 차기 대선 주자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청계천 복원 사업’ 같은 대표적인 치적을 만들 수 있는 개발사업에 보다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박 시장은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시의 권한 확대를 시도했다. “서울시의 정책 수단과 권한에 한계가 있다. 중앙 정부가 서울시에 권한을 줘야 한다”는 평소 주장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19일 국토부에 ‘표준지공시지가 결정 권한’을 시·도지사에게 이양해달라고 공문을 통해 요청했다. 공시가격 현실화를 위해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시·도지사가 표준지공시지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서울시가 국토부장관의 권한을 이양해달라고 나서면서 여의도·용산 개발에 이어 다시 박 시장과 김 장관 간 대립 구도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토부는 표준지공시지가 결정권한이 법률로 정해져 있고 국토부가 개선안을 검토 중인 상황에서 서울시가 이양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일각에서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서울시의 권한을 확대하고 시에 귀속되는 재산세 수입을 늘리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서울시와 국토부 등 중앙부처간의 마찰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은 부동산 정치를 통한 대권 행보의 보폭을 넓히려고 하는데 시 차원의 권한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양측간 충돌이 빈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