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방향은 잘 잡고 가치는 꼭 지켜라

연세대 철학과 교수

<78>보수-진보 혁신의 길

보수,기득권 잊고 가치는 지키고

진보,미래 선동·혼란 방치 없어야

비전있는 보수·현실 아는 진보로

함께 혁신하는 사회 만들어가길




보수는 지킬 가치를 지켜야 하고 진보는 나갈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보수가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른 채 타협하는 것이다. 진보는 보수가 지배한 과거만을 탓하면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가자고 말하는 데 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덮으려 하고 상대가 잘못한 것은 불을 켜고 들춰낸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큰 공이나 세운 것처럼 착각하면서 자랑한다. 전형적인 제로섬게임 사고방식이다. 나라가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서로가 서로를 건전한 견제세력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박멸해야 할 적으로 보게 된다. 결국 우리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다 공멸할 수가 있다.



보수가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기존의 성공에 도취하지 말라. 과거의 성공을 잊어라. 한 번 성공한 방식만을 계속 고집하면 어느 시점에는 덫에 걸리게 마련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변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변화의 세계관을 새겨들어야 한다. 둘째, 기득권에 안주하지 말라. 성공하면 교만해지고 교만하면 방심하기 마련이다. 방심하면 무능을 용납하게 되고 무능한 자들은 자신의 약점을 감추는 방법으로 부패하게 된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의 사상가 존 액튼 경이 한 명언이다. 셋째, 지켜야 할 것을 분명하게 알아라. 우리나라 보수가 지켜야 할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인의 존엄성과 행복추구를 보장해줘야 한다. 다른 것은 다 타협해도 이것만은 안 된다는 기본 전제 조건에 충실해야 한다.


진보도 버려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선동을 부추기지 말라. 진보는 속성상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늘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나가자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것을 과장해서 제시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의 팩트 체킹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목소리만 키운다고 개혁되는 것도 아니고 미래를 장밋빛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둘째, 혼란을 방치하지 말라. 모든 변화에는 어느 정도의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그 폭은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 판을 너무 자주 바꾸려고 하면 무리다. 판이 아예 깨지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 판을 한꺼번에 다 바꾸려고 하다 보면 지나치게 과격해진다. 그래서 혼란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셋째, 과거를 송두리째 버리지 말라. 한 나라가 이만큼 굴러온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과거는 잊고 현재는 즐기는 것이 삶을 사는 올바른 태도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명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말이다. 과거를 잊는 최상의 방법은 다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교훈을 빨리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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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든 보수든 똑같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사람이 끼리끼리 뭉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칙이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한다. 현실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를 위한 최소한의 동맹관계를 맺는 것이다. 과반수가 전체의사를 결정하는 선거에서 필수전략이다. 그러나 같이 가져가야 할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원칙도 있다. 둘째, 상대방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자빠진다고 내가 앞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경쟁자보다 앞서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오늘도 내가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느냐다. 셋째, 상대방이 실수하기만을 바라고 그래서 불행해지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건전한 나라가 아니다. 정신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어떤 사회인가. 비전이 있는 보수와 현실을 아는 진보가 함께 있는 사회를 꿈꿔 본다. 유능한 보수와 청렴한 진보가 협력하는 미래를 그려 본다.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고하게 아는 보수와 나가야 할 방향이 어느 곳인지를 제대로 제시하는 진보가 상호 견제하는 우리 사회를 그려본다. 지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악습을 구분할 줄 아는 보수와 가야 할 방향과 가지 말아야 할 방향을 분별할 줄 아는 진보를 기대해본다. 지켜야 할 가치는 정해져 있어도 지키는 방식은 늘 새로워야 한다. 가야 할 방향은 정해져 있어도 가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보수도 진보도 혁신해야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혁신은 당위다. 나라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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