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타파했다. 그는 자유롭게 곡을 뽑아냈다. 27일 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공연장에서 열린 밥 딜런(77)의 내한공연은 무더운 금요일 밤 지하 무도회장에서 열린 끈적한 재즈 파티에 온 것 같았다.
이번 공연은 2010년 3월 31일 같은 장소에서 펼쳐진 첫 내한 공연 이후 8년만의 공연. 그 때나 지금이나 밥 딜런의 겉모습은 뜨악했다.
그는 공연이 시작된 오후 8시 2분부터 9시 48분까지 한마디도 없이 노래했다. 해외 스타들이 한국을 찾으면 으레 하던 ‘안녕하세요’도 없었다. ‘워치타워(Watchtower)’, ‘트와이스(Twice)’부터 ‘순 애프터 미드나이트(Soon after midnight)’, ‘서브 섬바디(Serve somebody)’까지 19곡을 이어 부른 뒤 홀연히 사라졌다. 2~3분간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 뒤 다시 나타난 밥 딜런은 1960년대 저항의 상징으로 불린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을 불렀다.
그의 가사는 시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그의 가사에 매료됐던 이들은 그가 나지막하게 가사를 읊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 그의 가사를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가사를 흘러 발음하는 특유의 창법 때문에 가사를 보며 들어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편곡도 적지 않은 폭으로 이뤄져 첫 소절을 들을 때까지는 어떤 노래인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실제로 객석 중간에서 노래가 어느정도 진행된 뒤에야 ‘아 이 노래였어’라고 감탄한 이가 적지 않았다. 지난 2010년 첫 내한 공연 때도 그랬다. 어두운 조명만이 감싼 무대에서 딜런은 원곡의 선율을 거의 무시했다. 특별한 무대장치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도 아티스트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설치하는 대형 스크린 하나 없었다. 심지어 공연 도중에 나가는 팬도 있었다. 그의 대표곡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도 없었다. 그는 최근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밥 딜런의 내한 공연 의뢰가 들어왔으나 고사했다는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한국인 대부분이 그의 이름은 알지만 노래는 잘 모른다”며 “딜런의 예술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국내에서 흥행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라고 귀띔했다.
그래도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 첫 내한인 만큼 이번 무대에 쏠린 관심은 뜨거웠다. 7,000석가량 준비됐던 좌석이 가득 찬 것은 물론이다. 관객층도 특별했다. 여타 가수의 내한 공연처럼 20·30대 팬들도 있었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노년의 신사숙녀들도 과거의 추억을 곱씹기 위해 폭염을 마다하지 않고 그에게 향했다. 외국인 관객들도 많았다.
공연을 이끄는 밥 딜런의 힘 또한 과연 거장다웠다. 스크린도 없이 커튼과 조명이 전부인 단출한 무대였지만 그의 음악과 목소리가 주는 집중력은 남달랐다. 어떤 의미인지 모르면 또 어떠한가.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서 채플린은 아무런 대사 없이도 모든 이들을 열광시켰다. 가사를 보지 않고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LP바에서 눈을 감고 흑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음미하는 듯했다. 자유와 평화, 사랑을 노래하는 성대의 떨림이 가슴을 울리게 했다.
기타를 든 채 공연을 시작했던 딜런은 피아노를 연주하며 하모니카도 불었다. 하이라이트는 ‘오텀 리브스(Autumn Leaves)’를 부를 때였다. 그는 무대 한가운데에서 스텐딩 마이크를 들고 45도로 기울이며 노래를 불렀다. 이날 그가 보여준 거의 유일한 퍼포먼스였다. 노래도 퍼포먼스도 단순했지만 딜런만의 힘이 있었다.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덤이었다. 한 세대를 풍미한 거장의 퍼포먼스에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