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日 고레에다 감독 "영화는 삶의 모습일 뿐…고발 의도로 만들지 않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어느 가족' 국내 개봉기념 내한 간담

日 도시빈민 문제 깊이있게 조명

우익 "치부 드러냈다" 잇단 비난

"뜻하지 않은 큰상 받아 기쁘지만

정쟁의 소재로 활용돼 안타까워"

거장 후광 업고 발전한 日영화 속

차기작은 佛 합작…他문화권 도전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수상자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30일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 영화 ‘어느 가족’의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수상자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30일 서울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 영화 ‘어느 가족’의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작품을 만들 때는 작게 낳아 길게 시간을 들여 키워가자는 마음으로 만듭니다. 뜻하지 않게 ‘어느 가족’이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게 됐고 그에 힘입어 전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갈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지난 5월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어느 가족’의 국내 개봉을 기념해 30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일본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수상 소감은 단출했다. “큰 상을 받았지만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자세는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수차례 강조했다.

‘어느 가족’ 포스터 /사진제공=티캐스트‘어느 가족’ 포스터 /사진제공=티캐스트


영화는 할머니 하쓰에(기키 기린)의 연금과 좀도둑질(만비키)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친부모의 학대로 집을 나온 작은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를 거두게 되면서 시작된다. 낡고 좁은 목조주택에서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겉보기에 할머니와 부부, 여동생과 아들로 구성된 가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신분을 감춘 채 살아가는 증발자들이다. 연금이든 성매매든 좀도둑질이든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의 생계에 보탬이 돼야 하는 만비키 가족의 모습은 세상의 눈으로는 범죄집단이지만 이들을 ‘진짜 가족’으로 이어주는 것은 가슴 깊이 새겨진 학대와 소외의 상처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눠 갖는 연민이다.


전작에서 도시 빈민, 가족 해체, 공동체 붕괴 등 부자 나라 일본이 외면하는 비루한 현실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도시 빈민 문제를 깊이 있게 조명했다. 그러나 일본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우익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축하 메시지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레에다 감독은 “정부의 축하를 받는 것은 영화의 본질과 그다지 상관없는 문제고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된다는 사실도 편하지 않다”며 “무언가를 고발하거나 경종을 울리겠다는 의도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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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제공=티캐스트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진제공=티캐스트


영화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배우들과의 작업 후일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대부분에서 어머니나 할머니로 등장한 기키 키린은 ‘어느 가족’의 크랭크인 당일 마지막 등장 신을 촬영하면서 대본에 없던 장면을 남겼고 이를 촬영분 확인 과정에서 발견한 고레에다 감독은 이 대사가 할머니 등장 신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도록 줄거리와 장면을 모두 수정했다고 한다. 그는 “배우 스스로 포착한 것을 슬쩍 꺼내놓았을 때 이를 간과하는 연출자라면 좋은 배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없을 것”이라며 “훌륭한 배우들이 꺼내놓은 것은 놓치지 않고 다시 던져주는 연출이 되기 위해 늘 진검승부를 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 이번 영화에서 아버지 오사무 역으로 열연한 릴리 프랭키에게는 “‘영화가 전개되는 내내 인간적으로 성장하지 않는 어려운 역할이고 아이가 성장하며 아버지를 앞질러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슬픈 아버지상이지만 이 역할을 꼭 맡아달라’는 손편지를 정성스럽게 보냈다”는 일화를 공유하기도 했다.

가장 일본적인 이야기로 국경과 문화의 장벽을 넘어선 고레에다 감독은 이제 스스로 문턱을 넘어서려고 한다. 차기작은 프랑스와 일본의 합작 영화 ‘라 베리테(가제)’로 프랑스에서 이선 호크, 카트린 드뇌브, 쥘리에트 비노슈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나를 비롯해 지금의 일본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같은 훌륭한 감독들의 후광에 힘입어 전 세계에 소개될 수 있었다”며 “지금처럼 일본 영화산업이 내향적 형태에 머문다면 10년 후 재능 있는 일본 감독들이 넓은 시야를 보여줄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해외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작품이 언어나 문화를 뛰어넘어 많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이제는 연출자가 다른 문화권에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가 새로운 과제가 됐다”며 “잘 마무리된다면 한국에서도 평소 함께하고 싶었던 매력적인 배우들과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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