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욕망의 나무
4차 산업혁명의 소비는 욕구에서 욕망으로 진화한다. 3차 산업혁명까지는 사회적 욕구(needs)가 소비를 결정했으나 4차 산업혁명부터는 개인적 욕망(desire)이 소비 형태를 바꾸는 것이다. 욕구는 유한한 정형성이 있으나 욕망은 무한한 다양성을 속성으로 한다. 이제 욕망의 나무로 4차 산업혁명을 살펴보자.
산업의 본질은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다. 생산을 잘한다고 산업적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소비 수요만 있다고 산업이 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생산은 기술의, 소비는 인간의 욕구와 욕망의 함수이고 이를 순환시키는 것이 경제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이 기술 관점에서만 해석된 것은 3차 산업혁명까지는 생산 주도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서는 이러한 가정이 근본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기술을 만드는 메타 기술의 발달로 기술 개발은 쉬워지는 반면 인간의 욕구는 개인화된 욕망으로 분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술과 생산에서 소비와 욕망으로 산업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은, 일부 문제는 있으나 뇌과학의 발달로 과학적 타당성이 상당 부분 검증됐다. 1차 산업혁명은 물질의 수동적 욕구 형태인 생존의 욕구를 충족시켰고 2차 산업혁명은 물질의 능동적 형태인 서비스를 통한 안정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어 3차 산업혁명은 세상을 연결하는 정보혁명으로 수동적 사회 욕구인 귀속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이 시기까지 마케팅은 ‘니즈(needs)’라는 이름의 비교적 정형화된 사회적 욕구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능동적 사회 욕구인 자기표현 욕구의 4차 산업혁명이 다가왔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 형태로는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욕망의 나무라는, 인간의 욕구를 설명할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생존의 욕구는 매우 단순하다. 춥고 배고프지 않으면 된다. 산업혁명 초기 90%가 넘던 절대빈곤층은 이제 7% 이하로 축소되면서 인류 대부분이 생존의 욕구에서 벗어나게 됐다. 1차 산업혁명이 충족시킨 생존의 욕구는 나무 밑동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 2차 산업혁명의 다양한 서비스 산업이 충족시킨 안정의 욕구는 나무의 큰 가지가 되고 3차 산업혁명의 지식 서비스 산업은 나무의 작은 가지들로 표현될 수 있다. 인간의 욕구는 산업혁명의 진화와 더불어 더욱 다양해지고 있음을 욕망의 나무는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에서 욕망의 나무에는 개인화된 욕망의 나뭇잎들이 무성하게 달리게 된다. 이제 소비는 사회적 욕구가 아니라 개인화된 욕망이 결정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이 개인화된 경험경제로 진화하고 있음을 파악한 기업가들이 성공하고 있다. 여행·음식·미디어 등 모든 산업이 개인화되고 있다. 개인화된 경험을 공유하는 경험경제가 4차 산업혁명의 미디어4.0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화된 시공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불가능했다. 이제 빅데이터·인공지능·3D프린팅 같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과 공유경제가 이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파괴된 일자리는 개인화된 경험경제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로 창조될 것이다. 단순한 나무줄기의 욕구 충족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무성한 나뭇잎의 일자리들을 생각해보라. 기술이 없앤 일자리를 인간의 미충족 욕망이 만들어왔다. 이제 무한하게 다양한 롱테일(longtail)의 일자리들이 등장하고 궁극적으로 DIY로 진화한다.
이제 기업가들은 자기표현을 넘어 자아실현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이들의 혁신을 통해 사회는 성장하고 그 성과가 선순환 분배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다음 진화 단계다. 이들은 꽃과 열매를 통해 가치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제 욕구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욕망의 나무로 4차 산업혁명을 새롭게 이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