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선진국도 혁신 매달리는데…韓, 정책 재탕하며 미래 대비 손놔"

■ 창간기획-현·차기 경제학회장 특별대담

김경수(왼쪽) 한국경제학회장과 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김경수(왼쪽) 한국경제학회장과 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



2018년 한국 경제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우외환이다. 안으로는 자동차·조선 등 주력산업이 부진하고 내수침체에 고용쇼크까지 겹쳤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부터 2003년 신용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글로벌 재정위기에 이어 5년마다 반복되는 위기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현직 한국경제학회장인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와 차기 학회장인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의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거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KDB산업은행 혁신위원장 등을 거친 거시경제 전문가이며 이 교수는 한국경제연구원 금융재정연구센터 소장,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12대 통계청장 등을 역임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학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전문가는 거시경제, 성장전략, 복지와 재정, 미중 무역전쟁,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대담은 지난달 23일 서울경제신문사에서 이뤄졌다.


/사회=이철균 경제부장 fusioncj@sedaily.com

글로벌 경제, 사실상 美 나홀로 호황

세계 경기 악화하면 韓 상당한 타격

이미 지표 부진한데 정부 인식 안이



△사회=올해 들어 경기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통계청이 발표하는 경기순환시계라는 것이 있다. 광공업생산·서비스생산·소매판매액·설비투자·수출입액 등 주요 10개 경기지표가 하강하는지 상승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가장 최근인 5월 시계를 보면 광공업지수만 회복 단계고 나머지 9개는 모두 하강 흐름이다. 올 1월만 해도 4개가 상승 국면이었다. 경기가 하강할 가능성이 높다.

△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하강 국면에 있다는 데 동의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부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 주요 지표들이 다 악화하는데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을 하고 있다’며 개선 흐름이라고 한다. 잠재성장률 자체가 떨어지는 흐름인데도 말이다. 특히 고용이 심각하다. 정부는 취업자 수 증가폭이 줄어들자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하지만 고용률을 봐도 떨어지고 있다.

△김 회장=세계 경제 개선의 흐름이 꺾이고 있다는 점도 잘 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미국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하락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에 기대 성장하는데 세계 경기가 악화하면 수출마저 기대하기 어렵다.

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송은석기자김경수 한국경제학회장./송은석기자


△사회=미중 무역분쟁도 주요 위험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김 회장=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무역적자가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사실상 나 홀로 호황인 상태여서 수입수요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또 세계 경기가 꺾이기 시작하면 나머지 주요국들은 수입이 줄어들 것이다. 미국의 적자 문제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국을 압박할수록 이런 구조는 심화할 것이고 그러면 압박을 더 키우는 식으로 악순환이 길어질 우려가 있다.

△이 차기 회장=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은 근본적으로 패권전쟁이어서 쉽게 해결되기가 어렵다고 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어느 쪽이든 출혈이 날 수밖에 없고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김 회장=중국이 특히 불안하다. 중국은 금융 버블이 심각지면서 긴축개혁에 들어갔는데 최근 무역분쟁 과정에서 경제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자 지급준비율 인하 등 유동성 공급 정책을 썼다. 이렇게 하면 버블은 더 심해진다. 또 무역분쟁 대응책으로 위안화 절하를 용인하다 보니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자본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즉 중국 경제가 불안해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우리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어디까지나 보완책

혁신성장 통해 양극화 등 해소 필요


구호 아닌 구체·체계적 로드맵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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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데 두 분이 동의하는 것 같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차기 회장=위기는 항상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특유의 돌파력으로 헤쳐나갔다. 극복할 수는 있을 텐데, 문제는 속도다. 침체 국면에서 빨리 벗어나려면 정책기조를 시급히 바꿔야 하는데 아직도 소득주도 성장에 집착하고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면 성장이 된다는 이론 자체가 설득력이 부족할뿐더러, 예전에 수요가 부족할 때 했던 정책이다. 그때 대책을 재탕·삼탕하고 있다.

△김 회장=소득주도 성장은 어디까지나 보완책으로 써야 할 정책이다. 기본적으로 성장을 해야 복지나 불평등 해소도 원활히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그런 면에서 혁신성장을 소득주도보다 주요한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 선진국들도 혁신·기술혁명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국의 ‘제조2025’, 독일의 ‘인더스트리4.0’이 그렇고 일본의 ‘소사이어티5.0’도 같은 맥락이다. 현 정부가 혁신성장을 얘기하지만 구호만 있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이 차기 회장=우리가 3% 성장이냐, 2% 성장이냐 얘기하는데 3%라고 해봤자 세계 평균 성장률에 못 미친다. 수출 증가율도 세계 평균을 계속 밑돌고 있다. 한국은 경제 후발주자인데 너무 빨리 늙어버린 거다. 그런데 미래 대비는 손을 놓고 있다. 반도체 외에 새로운 미래 먹거리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제일 걱정이다.

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송은석기자이인실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송은석기자


△사회=무엇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이 차기 회장=모든 대책에는 이익단체가 있다. 이익단체를 뛰어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최저임금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의 당사자(근로자와 사용자)가 아닌 국가경제를 위해 인상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근로자 측 위원과 사용자 측 위원을 모두 빼고 공익위원만으로 결정하는 게 맞다.

△김 회장=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 같은 정책의 경우 생산성이 높은 기업에는 별 영향을 못 준다. 결국 생산성이 떨어지고 취약한 업체들만 더 어려워진다.

△이 차기 회장=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워진 ‘을(소상공인 등)’을 돕겠다고 수수료를 손대는 것은 더 위험하다. 비용을 정부가 대주겠다고 하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나.

△김 회장=사회적 안전망을 튼튼하게 만들 필요는 있다. 실직해도 다시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다만 안전망과 최저임금은 분리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안전망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취약업체만 타격

乙 돕겠다고 수수료 등 손대면 더 위험

안전망 강화하고 투자환경 개선해야

△사회=어떻게 해야 기업이 미래 먹거리에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 있나.

△김 회장=현 정부 들어 법인세를 인상했다. 정부가 쓸 돈이 필요해서 그랬다면 이해가 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환경이 어려워진 것이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까지 시행했다. 이런 정책들은 특히 규모가 작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에 큰 타격을 준다. 정부가 강조하는 불평등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것이다. 일자리 측면에서 노동은 쉽게 돌아다닐 수 없지만 자본은 ‘발’이 달렸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와 외국 기업의 국내직접투자를 비교하면 지난 12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0.4%가 해외로 순유출됐다. 결과적으로 해외 일자리만 늘고 국내 일자리는 줄어든다. 국내에서 기업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게 투자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 차기 회장=아는 중소기업 운영자를 최근에 만났는데 “수십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직원들 월급 주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살았는데 기업을 힘들게 하는 정책들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사업하기가 어렵다”고 하더라. 이제 해외로 나갈 거라면서. 경제가 살고 고용을 늘리려면 결국 기업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기업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할 텐데,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정리=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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