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산 연어는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이 90%를 넘어설 만큼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노르웨이산 연어는 지난 2010년 중국인의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반체제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중국은 정치·외교적 단절을 선언하고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통제했다. 노르웨이산 연어의 시장 점유율은 30%로 떨어졌고 노르웨이의 수출 피해 규모는 1조원을 넘었다.
중국은 국가의 ‘핵심 이익’을 건드렸다고 판단하면 무차별적인 경제보복을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자 경제보복 등의 압박을 가했다. 사드 보복으로 우리의 피해 규모는 지난해에만 최대 20조원에 달했고 경제성장률을 0.4%나 갉아먹었다는 분석도 있다. 우진훈 베이징 외국어대 교수는 “이 같은 보복으로 중국은 국제적으로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중국 내부에 강하다”며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빈번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는 경제 보복으로 맞서기에 오히려 당할 수 있다는 내부 경계감이 확산되면서 한발 물러서는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 동안 어떤 국가라도 거대 경제력을 앞세워 굴복시킬 수 있었던 이전 사례와 달리 미국이라는 더 큰 적을 만나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눈치를 보면 속도조절에 들어가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커지는 경제력…비례하는 힘의 보복= 중국의 경제력이 커갈수록 힘의 보복도 빈번했다. 2010년 일본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희토류 금속 수출 금지와 일본관광 자제, 도요타자동차 뇌물공여 혐의 조사 등 전방위로 압박했다. 중국의 보복으로 희토류 수입가격은 6개월간 10배가 뛰었고 네오디뮴·이테르븀 등의 희토류 가격은 10배나 폭등하며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다.탕슈문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국속담에 ‘군자가 복수를 하는 데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의미의 고사가 있다. 서두르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만다는 게 중국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 혹은 약정한 국가들에 대해서도 자국의 국익에 반할 경우 매서운 보복을 가했다. 몽골이 대표적이다. 몽골 정부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 14세의 입국을 허용하자 중국 정부는 곧바로 몽골과의 철도 건설, 광산 개발 등 금융 및 프로젝트 지원을 위한 회담 등을 무기 연기했고 국경을 통과하는 차량마다 통관비를 징수했다. 내몽골 지역 광산에 들어가는 전기도 끊어 경제적 위기에 직면했다. 몽골 정부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엄치성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외국 항공사 36곳에 대만을 별도의 주권지역으로 표기하지 않거나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도록 명칭 변경을 완료할 것을 요구해 모두 수용된 것처럼 중국은 민간 기업에도 보복을 앞세워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종교·문화 영역에도 ‘칼’= 근래 들어 중국은 종교·문화 등의 영역에서도 ‘칼’을 휘두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바티칸 교황청은 최근 중국에 주교 임명권을 양보했다. 임명권은 바티칸이 중국과의 오랜 수교협상에서도 절대 양보하지 않던 것인데 중국의 경제압박에 이를 내준 것이다. 지난 5월에는 호주산 와인 수입을 사실상 금지했다. 호주는 지난해 전년 대비 51% 늘어난 7억5,000만달러 규모의 와인을 중국에 수출했다. 중국이 표면적으로 꺼낸 이유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검증 및 인증 프로세스 도입. 하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다른 이유를 꼽는다. 호주 의회가 4월부터 ‘외국의 내정간섭 차단 법안’을 심의하는 데 반발해 호주를 상대로 무역보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주에서는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이 정계와 재계 등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두고 내정간섭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中 이중성=또 다른 중국 속담으로 도광양회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운다는 의미인데, 최근 미국과의 무역전쟁 과장에서 중국 언론들 사이에서 제기된 용어다. 미국과의 전면전에 ‘속도조절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약자에는 강하고 강자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또 다른 중국의 민낯이다. 미국이 고율의 관세를 매기자 미국을 성토하며 바로 보복 관세로 맞섰던 중국이지만 최근에는 조용하다. 아직은 미국에 대항할 정치·경제력 측면에서 힘이 밀리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경계감이 커지면서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류펑 중국 난카이대 교수는 “최근의 변화는 중국이 ‘전략적 위축’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며 “지나친 자신감은 위험하고 지금 중국의 전략적 위축은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강적으로 인식되는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위기감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보복을 일삼던 한국과 유럽연합(EU)에 먼저 손을 내밀며 우군으로 포석하기 위한 발걸음에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주변국과의 동맹관계를 두텁게 하는 동시에 반미 전선을 넓혀 미국에 맞서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지난해 사드 배치 문제로 확산된 반한감정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조철 산업연구원 중국산업연구부장은 “최근 중국의 정부기관과 연구소 등을 방문했을 때 지난해와는 전혀 다르게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과의 무역전쟁 때문인지 우리를 적이 아닌 자신들 편으로 만들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