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돈 5일 오전 11시 서울역 앞. 전날 열대야를 피해 응급대피소에서 눈을 붙인 노숙인들이 하나 둘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응급대피소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숙박도 가능하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 인천 강화군과 경기 이천시 등 타지에서 온 이들이다. 8개월째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모씨(50)는 “경기도만 나가도 제대로 쉴 곳이 없어 서울로 되돌아오게 된다”며 “지방에도 이런 시설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폭염이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노숙인 보호대책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남·강원 등은 실질적인 응급피난처가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나 해당 지방에 거주하는 노숙인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현재 재활·자활·요양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노숙인은 약 2,000여 명(일시보호시설 포함)으로 추산된다. 알코올중독이 심하거나 규칙적인 시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거리 생활을 하는 이들은 노숙인들 중에서도 더위에 가장 취약하다. 그나마 2011년 이전에는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에서 몸을 피할 수 있었으나 시민 불편을 이유로 쫓겨난 뒤부터는 도로 위에서 ‘맨몸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다.
문제는 노숙인들의 혹서기 유일한 피난처인 응급대피소 시설이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시설에 입소하지 않고도 24시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응급대피소를 최대 6곳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러나 경기·전라·제주도 등은 전체 도(都)에서 1~2곳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전남의 경우 상당수 노숙인이 입주한 자활·요양시설 7곳을 제외하면 응급대피소가 아예 없다. 일시보호시설과 자활시설 등은 이미 자립지원을 받는 노숙인들이 다수 생활하고 있어 노숙인이 불시에 찾아와 쉴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이에 따라 전남 22개 시·군에 퍼져 있는 거리 노숙인들은 폭염을 피할 곳이 없는 형편이다. 강원와 제주 역시 자활시설을 제외한 응급피난처가 없거나 1곳에 불과하다.
부정확한 통계는 지역편차를 더욱 가중시킨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올해 노숙인 현황 통계를 보면 전라남도청은 전라남도 전체에 거주하는 노숙인이 1명, 제주시청은 0명이라고 신고했다. 경찰 신고로만 집계하거나 여관·모텔 등에 임시로 머무는 노숙인들을 배제한 탓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최소한의 인프라도 없는 곳에선 노숙인도 못 살고 떠난다”며 “노숙인 범위를 주거지취약계층까지 확대하는 국제기준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홈리스행동은 최근 전남 신안군에서 목포항으로 건너 온 노숙인 1명을 파악해 호적 만들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수범 다시서기지원센터 실장은 “중앙정부 지침이 있어도 지방자치단체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지방분권사업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응급대피소 운영 현황은 별도로 파악하지 않았다”며 “주기적으로 각 지자체 노숙인 관리 실태를 점검·관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