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집카(Zipcar)’라는 렌터카 공유 서비스를 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엔 지인의 소개로 사회적 기업 동아리의 리더를 맡게 됐다. 우연히 참가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창업에 나섰다. 미국에서 접했던 ‘집카’가 떠올랐다. 공유경제 플랫폼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공유경제 플랫폼 사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열망을 안고 ‘숍인숍(Shop in Shop)’ 공간을 중개하는 앱·홈페이지 기반 플랫폼 업체인 ‘위드인샵’을 세웠다.
권혜진(33·사진) 위드인샵 대표가 창업에 나선 것은 우연의 연속이지만, 그 지점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녀의 인생관이다. 일단 재밌어 보이는 일이면 무조건 도전하는 성격 덕분에, 그는 ‘우연하지 않게’ 공유경제 플랫폼을 두 번이나 운영하게 됐다.
◇나를 키운 8할은 ‘즐거움’이다
“즐겁게 사는 걸 좋아해요. 타고난 성격이 원래 그래요. 사소한 일로 스트레스 받는 성격도 아니고요. ‘일단 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매일 매일을 살려고 하죠.”
시작은 미국 생활이었다. 수능이 막 끝났을 무렵, 하와이에 있는 친구가 현지에서 같이 살아보자고 권유했다. 외국 경험도 해보고 수험생활로 쌓인 답답함도 풀고 싶다는 마음에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하와이에서 거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와이에선 영어를 배우면서 여가도 즐기고, 여행도 다니는 생활을 이어갔다.
하와이에서 지낸 지 6개월이 지난 후, 같이 살던 친구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다. 그녀를 따라 나서 캘리포니아를 처음 접했다. 내친 김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근처에 있는 UC버클리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게 됐다. 권 대표는 “학교에 되게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덕분에 공부하는 게 더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권 대표가 지금 시점에서 가장 인상 깊게 떠올리는 소재는 ‘집카’다. 집카는 1999년 미국에서 설립된 회원제 렌터카 공유 회사다. 2000년대 초반부터 빈터에 공용 자동차를 비치해 회원들에게 시간제로 이를 빌려 쓰는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쏘카(SOCAR) 등 공유차량 스타트업의 원조로 꼽힌다. 권 대표는 “주변에 집카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며 “우리나라엔 왜 이런 서비스가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권 대표는 “비록 실리콘밸리가 옆에 있었지만, 미국에 있을 때만 해도 창업엔 관심이 없었다”며 “만약 지금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공유경제 스타트업에 대해 더 공부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아쉬워했다. 당시 경험이 창업에 영향을 끼친 건 분명했다.
◇‘빌리지’ 창업으로 ‘공유경제’를 처음 사업화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도중 친구의 권유로 ‘소시지팩토리’라는 소셜벤처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창업 활동을 경험했다. 소시지팩토리 소속으로 사회적기업진흥원의 경진대회에 참여하면서다. 이 대회에서 입상해 창업자금을 받아 2012년 ‘빌리지(Billiji)’라는 소셜벤처를 열게 됐다.
‘빌리지’는 ‘빌리다’와 ‘마을(village)’을 합성해 지은 이름이다.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빌려주는 웹·애플리케이션 연동 서비스다. 한 지역 안에서의 물건 공유를 촉진해 공동체 내 유대를 회복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가령 한 대학생이 강의를 다 들어 더 이상 교재나 계산기를 쓸 필요가 없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때 빌리지 커뮤니티에 해당 책과 계산기를 올려놓으면, 이를 빌리고 싶은 후배가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 선후배 사이에 서로 얼굴도 트고 멘토-멘티 관계도 도모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빌리지는 국내 스타트업 중에서 공유경제를 앞서 시행한 곳 중 하나다. 2013년 ‘서울시 1기 공유기업’으로 선정된 게 그 방증이다. 서울시에서 시작한 ‘공유기업 인증사업’은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2년 서울을 ‘공유도시’로 만든다고 천명한 데 따른 것이었다.
유명세를 탔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유경제는 지금처럼 대중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권 대표는 “프랑스 공영방송에서도 취재해가는 등 우리나라 공유경제 사례로 빌리지가 꽤 많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권 대표가 ‘공유경제’라는 개념을 머리에 넣고 빌리지를 창업한 건 아니었다. 그는 “우리는 공유경제를 한다고 창업을 한 건 아니었는데, 여러 곳에서 우릴 공유경제라는 카테고리에 넣곤 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준비를 거친 두 번째 창업
빌리지 사업으로 정신이 없었던 2013년, 권 대표는 창업을 더 공부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입학했다. MBA 과정을 끝낸 이후엔 잠시 정책컨설팅 회사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경험했다.
새로 창업을 하고 싶어 지난해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공유경제를 테마로 잡았지만, 이번에는 ‘숍인숍 플랫폼’을 선택했다. 회사 이름은 ‘위드인샵’으로 정했다. 이후 권 대표는 6월에 청년창업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인 드림플러스로 입주했다.
지난 창업 때보다 더 많은 준비를 거쳤다. 특히 빌리지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내부 조직을 최소화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점이었다. 빌리지에선 총 9명이 일했다. 그럼에도 권 대표는 리더십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때 저는 무조건 수평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실감했습니다. 당시 구성원 전부 뛰어난 분들이었습니다. 모두 매우 논리적인 의견을 주곤 했지만, 모든 의견을 들으려다 보니 역으로 결론을 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엄청 길어지고 의사결정도 지체되곤 했죠. 어느 지점에선 한 방향으로 끌고 갈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잖아요. 수평적인 조직 운영에서 나타나는 일장일단을 느꼈습니다.”
때문에 권 대표는 현재 소수 인원하고만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회계·법률 자문 등은 외부 파트너들과 함께 협업하고 있다. IT기술자, 변호사, 회계사 등으로 구성된 외부 파트너들은 모두 파트타임으로 위드인샵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중심 조직의 규모를 최소화해 유연성을 높이고, 전문용역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는 의도다. 권 대표는 “지금은 조직을 키우기보단 사업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이라며 그 취지를 얘기했다.
두 번째 이유는 조직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나마 빌리지는 준(準) 동아리 형식으로 파트너 중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책임감을 느꼈다.
“처음 빌리지를 했을 때는 ‘모두 풀타임으로 가자’는 마인드였습니다. 근데 나중에 책임감이라는 게 생기더라구요. 이 사업이 100% 잘된다는 확신이 없는데, 소위 열정 페이로 동료들을 끌고 가기엔 미안함이 컸습니다. 다들 대기업은 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적은 봉급을 주며 내부 직원을 쓰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한 사업능력을 입증한 다음에 풀타임 인력을 뽑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위드인샵’으로 ‘가게 속의 공간’을 공유하러 나서다
“저희는 점포 안 유휴공간을 활용해 다른 사람들이 쉽게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용실 안에 네일숍을 두거나, 카페 안에 갤러리를 비치하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겠죠. 요새는 코인세탁방에서도 네일아트숍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처럼 저희는 두 가지 아이템을 한 장소에서 창업할 수 있도록 매칭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드인샵의 사업을 간단하게 정의하면 ‘숍인숍 중개 플랫폼’이다. 국내에는 뷰티 점포를 중심으로 숍인숍이 유행하고 있지만, 숍인숍 공간을 중개하는 곳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권 대표는 “공간 활용이 유리하다는 점에서 숍인숍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정보를 한데 모아줄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고 생각했다”며 “저희가 창업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위드인샵에 들어온 숍인숍 매물이 2,500건이 넘는다”고 전했다.
숍인숍은 기존 점포와 소액 창업자 사이의 ‘윈·윈’을 도모할 수 있는 창업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가게 입장에선 숍인숍을 들여 손님을 더 많이 유치하면서도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숍인숍 업자는 큰 매장에 들어감으로써 고객층을 확실히 보장받고 임대료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경력단절여성이나 취업을 준비하기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서 숍인숍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권 대표가 숍인숍을 아이템으로 잡은 이유는 확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현재는 미용실 안에 네일숍을 차리는 게 국내 숍인숍 시장의 주류지만, ‘공간 공유’라는 측면에서 갤러리, 서점 등으로 다양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KEB하나은행의 ‘컬처뱅크’를 꼽았다. 컬처뱅크는 KEB하나은행이 내놓은 문화콘텐츠 융복합 공간으로, 은행 점포 안에 카페, 서점 등을 비치한 게 특징이다.
“지인 중에 하나은행 ‘컬처뱅크’에 갤러리를 들인 사람이 있어요. 은행 점포에 오는 VIP 중에서 갤러리를 쭉 훑어보고 물건에 관심을 가져 주는 분들이 꽤 많다고 들었죠. 몇몇 분들은 아예 선물을 사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 맥락에서 권 대표는 요즘 ‘숍인숍 쇼룸’ 오픈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숍인숍 형태로 창업할 수 있는 모든 점포를 쇼룸에 들여, 방문객들에게 숍인숍이나 공간활용 창업 아이템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이를테면 위드인샵이 운영하는 숍인숍이다.
쇼룸엔 ‘실제로’ 숍인숍 창업을 원하는 업체들이 들어올 예정이다.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만난 창업자를 비롯해 갤러리 운영자, 네일아트 숍, 꽃집, 카페 등과는 이미 입주 합의를 마쳤다. 권 대표는 “저희가 온라인 플랫폼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오프라인에서 숍인숍 사업이 잘 될지 판단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가 필요했다”며 쇼룸을 준비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권 대표는 당분간 뷰티 사업 중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그는 “빌리지를 운영했을 땐 지마켓처럼 모든 콘텐츠를 다루려고 했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조직이 작은 경우엔 가장 수요가 많은 뷰티 숍인숍에 집중하고, 이후 문화콘텐츠·패션·카페 등으로 확장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카테고리가 한정적이지만 앞으로 점포의 유휴공간을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즐겁게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