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기술은 국가의 보배로 발전과 국가 안전보장을 위해 커다란 의의가 있다. 과학기술 지원, 금융정책 제도를 정비하고 인재를 선발해 첨단기술 분야의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중국공산당 중앙재경위원회 회의에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의 기술혁신 역량과 기초연구가 아직 선진국 수준에는 못 미쳤다는 점을 강조하며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인재육성에 힘을 쏟으라고 주문한 것이다.
시 주석은 평소에도 “천하의 모든 인재를 뽑아 내 사람으로 쓰겠다”고 밝힐 만큼 집권 초기부터 인재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지난 1990년대부터 막대한 자금을 들여 블랙홀처럼 자국은 물론 전 세계의 인재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중국은 시진핑 시대 들어 자국인과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 인재영입에 한층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의 본격적인 기술인재 육성정책은 덩샤오핑의 ‘백인계획(百人計劃)’에서 시작됐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중국 내 과학기술 인재의 싹이 마르자 덩샤오핑은 1980년대 중반부터 젊은이들에게 외국 유학을 대대적으로 허용하고 ‘매년 100명 이상의 해외 유학파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목표 아래 귀국 과학자들에게 막대한 지원금을 지급했다.
백인계획의 성공은 보다 발전된 ‘천인계획(千人計劃)’으로 이어졌다. 2008년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산업 발전을 위해 5~10년간 2,000여명의 해외 고급인재를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해외에서 유학한 일류 과학자와 첨단기술 사업가들에게는 최대 15억원(15만달러)에 달하는 현금, 집과 정착금뿐 아니라 무료로 쓸 수 있는 사무실과 연구실도 제공됐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학교에 ‘패스트트랙’으로 입학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내 대학에서 연구에 대한 각종 지원이 삭감된 것이 중국에는 오히려 호재가 됐다.
건국 100주년인 오는 2049년까지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추구하는 시 주석은 2012년부터 백인계획과 천인계획을 계승·발전시킨 ‘만인계획(萬人計劃)’을 시행하며 과거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인재 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10년간 국가적 인재 1만명을 키운다는 목표와 함께 ‘노벨상 수상이 기대되는 과학자 100인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실제 중국은 2015년 투유유 중국중의학연구원 명예교수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으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해외에서 공부한 뒤 본국으로 돌아오는 중국인 유학생 수는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27만3,000명에서 지난해에는 48만명으로 늘어났다.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를 주도해온 것은 이렇게 해외에서 들어온 중국의 고급인재들이다. 고향으로 회귀하는 바다거북을 뜻하는 ‘하이구이(海龜)’로 불리는 이들은 2009년에만도 중국 전역의 150개 창업단지에 8,000여개 기업을 설립하며 중국의 기술발전을 이끌고 있다.
韓은 中자본에 속수무책 뺏겨
글로벌 인재 쟁탈전 속수무책
중국의 ‘고급인재 모시기’는 자국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 노벨상 수상자, 세계 일류대 박사학위 취득자 등이 중국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할 경우 5~10년 기간의 장기비자를 발급해주기로 했다. 비자는 무료일 뿐 아니라 최단 하루 만에 나오고 배우자·자녀에게도 발급된다. 제한이 많고 엄격한 중국 취업·이민제도에서는 파격적인 예외다. ‘중국판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가최고과학기술상도 외국인에게 개방됐다. 이 상의 상금 규모는 500만위안(약 8억5,000만원)에 달한다. 베이징시는 3월 글로벌 인재의 출입국 편리화와 채용개방 등 인재유치를 위한 20개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두 외국의 고급 두뇌를 중국으로 끌어모으려는 조치들이다.
그 결과 중국 내 외국인 고급인력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중국 국가외국전문가국(SAFEA)은 1980년대에 1만명도 되지 않던 중국 내 외국인 인재가 2016년 90만명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1년 이들의 출신국가는 21개국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73개국으로 늘어났다. 장젠궈 국가외국전문가국장은 “외국 인재가 국가 혁신전략의 필수자원”이라며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적절한 기회가 주어져 ‘브레인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은 외국 인재를 유치하기는커녕 중국의 전방위 인재 공세에 밀려 자국의 고급 두뇌를 중국에 속수무책으로 빼앗기는 실정이다. 비교할 수 없는 연봉과 처우를 제안받아 국내 기술인재들이 중국 기업으로 가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고급두뇌유출지수에서 한국이 63개국 중 54위, 해외 고급인력을 끌어들이는 유인지수에서는 48위에 머물렀다는 점은 글로벌 인재 쟁탈전에서 무력화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