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연방 예산이 투입되는 공공 인프라 사업에 미국 제품 및 서비스 사용을 의무화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행정명령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철강 등 행정명령 발효에 따른 파장이 예상되는 업종의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행정명령을 내릴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방송은 15일(현지시간) 백악관이 기존의 ‘바이 아메리카’ 법안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끝에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미 정부 관계자들과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 정부는 공공 인프라 사업에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법률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후 확대됐지만 이번 행정명령은 그간 허용됐던 예외조차 불허하며 사실상 의무화 수준으로 강화하는 내용이라고 CNBC는 전했다.
트럼프 정부는 주 정부 등과 협력해 총 1조5,000억달러의 인프라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강화된 바이 아메리카 행정명령은 철도나 송유관 및 가스관, 광대역 통신망 등 대규모 공공 사회기반시설(SOC) 사업을 대상으로 원자재와 제품은 물론 용역으로까지 적용 대상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경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국장의 주도하에 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부품 및 기계 수요를 늘리겠다는 취지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안은 나바로 국장이 마련했으며 현재 부처 간 세부 조율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대규모 공공 인프라 사업에 미국산 조달을 의무화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자 국내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철강업체는 공공 인프라 사업에서 미국산 철강 사용을 강제해도 수출 물량 소화는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여파로 국내 기업의 미국 수출 물량이 최근 3년 평균의 70%로 묶인 탓이다. 그럼에도 실제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일부 영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내부적으로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 중견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이 미국 판매법인이나 현지 수입업체에 물량을 넘기면 이들이 알아서 최종 수요자에 넘기는 구조여서 공공 인프라 사업으로 흘러가는 물량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건설 자재로 많이 쓰이는 형강업체 등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현재 미국산 철강 가격이 1년 전보다 크게 올라 미국산 사용을 의무화하기는 어렵다”며 “특히 국내 철강이 대부분 송유관 등으로 많이 사용돼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전자업체들도 세탁기, TV, 태블릿PC, 공항에서 쓰는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등이 공공 인프라 투자 대상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 행정명령 가능성 및 세부 지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기계 업종 등은 미국 수출이 미미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명령이 없다면 미국의 공공 인프라 투자 확대는 시장수요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생산 대부분을 미국에서 하고 있는 두산밥캣 등은 트럼프 행정명령이 발효되더라도 수혜가 기대되는 업체로 꼽힌다.
다만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는 중국·인도 등의 수입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만큼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부처 협의과정에서 예산 부담이 급증할 우려를 제기하며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행정명령 발효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미국은 지난 1933년 대공황 당시 마련된 ‘바이 아메리칸 법’에 근거해 모든 연방정부 기관에서 재화 조달 시 미국산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국방부는 미국산 제품 구매에 대해 50%, 다른 기관들도 12%의 가격 우위를 제공한다. 또 1983년 발효된 바이 아메리카 규정은 연방교통국과 관련된 국가 및 지역 교통 프로젝트에 100% 미국산 제품을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뉴욕=손철특파원 고병기기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