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라는 수식어는 언제인가부터 아주 흔해졌다. 춤을 잘 추면 ‘춤신’, 연기를 잘하면 ‘연기의 신’으로 불린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재미를 위해 조금 과장해 그렇게 부르는 분위기도 있다는데 신이라는 호칭이 항상 영예로운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 자격에 대해 논란이 일기 때문이다.
‘사격의 신’은 예외다. 진종오(39·KT)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사격의 신이라는 칭호는 마치 한 몸처럼 자연스럽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기록은 한국 최초의 올림픽 3연패이자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단일 종목(50m 권총) 3연패다.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결선에서 6.6점을 쏘는 큰 실수로 7위까지 떨어지고도 무서운 뒷심으로 금메달을 캐냈으니 그의 기사에 항상 ‘갓(god)종오’ ‘이 형은 인정’ 같은 댓글들이 따라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8월18~9월2일) 출격을 앞둔 진종오를 최근 서울 광화문의 KT 사옥에서 만났다.
아시안게임 한국 선수 엔트리 807명 가운데는 남자 축구의 손흥민, 여자 배구의 김연경, 여자 양궁의 장혜진 등 쟁쟁한 스타가 많다. 그중에서도 올림픽 최다 메달(금4 은2, 여자 양궁의 김수녕과 6개로 동률) 선수로 한국 팀의 정신적 기둥인 진종오는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권총 한 자루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룬 그지만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은 아직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는 총 네 차례 참가한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은메달 한 개와 동메달 세 개에 만족해야 했다. 금메달은 단체전에서만 세 개를 땄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주종목인 50m 권총 개인전을 7위로 마친 진종오는 당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을 아직 은퇴하지 말라는 계시로 알고 더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는 이번에는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는 ‘압박’을 스스로 불어넣으며 국제 대회에서의 열일곱 번째 금메달을 준비하고 있다. 진종오는 “스스로 ‘마지막’을 부각하려 한다. 은퇴 시점도 고민해야 할 시기라 어떤 동기부여가 필요한지 걱정하다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경기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에 비해 쉽지 않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나 금메달의 최대 경쟁자는 중국이다. 내게 아시안게임은 올림픽과 똑같은 무게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인 진종오는 “언제 은퇴할 거냐”는 얘기를 최근 들어 부쩍 많이 듣는다고 한다.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것이 2004년이었으니 은퇴 얘기가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진종오는 “사격장이 내게는 평생직장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니 언제 은퇴할 거냐는 얘기는 언제 회사 그만둘 거냐는 물음으로 들리는 거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은 욕심이 큽니다. 정정당당하게 매번 선발전을 거쳐 대표 생활을 이어가는 거니까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해주시면 좋겠어요.”
아시안게임은 진짜 마지막일 확률이 높지만 올림픽은 다르다. 진종오는 전인미답의 50m 권총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리우올림픽에서 이미 2020 도쿄올림픽 도전을 선언했다. 그런데 메달 전선에 큰 변수가 하나 있다. 국제사격연맹(ISSF)의 개정안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받아들이면서 올림픽 종목에서 50m 권총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난해 6월 결정된 일이다. 진종오 등 아시아의 초강세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올림픽 종목에서 폐지되면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50m 권총 경기는 열리지 않는다. 진종오는 이번 대회 10m 공기권총 개인전에 ‘올인’하고 도쿄 때는 10m 개인전과 신설된 10m 혼성 종목에 나가는 것이 목표다.
50m 권총은 최고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일단 거리가 먼데다 실탄이 바람 등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고 너무 민감해 많은 선수가 도전을 꺼리는 종목이다. 그래서 더 50m에 애정이 깊던 진종오는 단일 종목 올림픽 4연패에 도전할 기회 자체를 잃어버렸다. 직장 생활 중 가장 전문적으로 일해온 부서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버린 것과 같다. ISSF 선수위원으로서 백방으로 뛰어봤지만 종목 폐지를 막지 못한 진종오는 “왜 그 종목을 없앴는지 타당한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아쉽다. 아무리 밑에서 아우성을 쳐봐도 결정권자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안타까워했다.
언제까지 실망만 하고 있을 진종오가 아니다. 그는 “중국·러시아·북한·우크라이나·세르비아까지 10m는 잘하는 나라가 너무 많다. 기록이 평준화돼 있어 한 번의 실수로도 메달을 놓친다”면서도 “(50m 권총 폐지 후) 10m 훈련을 꾸준히 해왔다”고 했다.
진종오에게 네 번의 올림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2 런던올림픽이다. 런던에서 그는 50m 권총과 10m 공기권총 두 종목을 석권했다. “사격의 신이라는 별명도 아마 그때 굳어진 것 같아요. 정말 기분 좋은 별명이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도쿄에서 또 한 번 시상대의 맨 위를 밟는다면 감동은 아마 런던 이상일 것이다. 리우에서 ‘넘버원’을 뜻하는 총번(銃番) 1번을 새기고 금메달을 쏜 진종오는 최근 총번을 ‘2020’으로 교체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사격에 입문한 진종오는 비비탄 총으로 캔을 맞히는 놀이를 어릴 적부터 가장 즐겨 했다고 한다. 비비탄 총을 사기 위해 어머니 지갑에 몰래 손을 댔다는 일화도 전해지는데 진종오는 “이참에 잘못된 정보는 확실히 뿌리 뽑아야겠다. 내 저금통을 털어서 산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마냥 쏘는 게 좋고 쏴서 뭔가를 맞히는 게 좋았다”는 진종오는 고교 때 쇄골 골절을 입은 뒤로 기량이 급상승했다. 대학 시절 축구를 하다 다른 쪽 쇄골이 또 골절된 뒤 기량은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됐다고 한다. 선수 생명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공교롭게도 실력은 더 쌓인 셈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고등학생 때는 반년 정도 고생한 것 같아요. 큰 부상을 당하고 난 뒤에는 아무래도 훈련을 오래 할 수 없으니까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더 끌어올려 했는데 결과가 좋더라고요.”
그는 사격에 입문한 후 사격 선수가 아닌 삶은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극도의 긴장감에 올림픽을 한 번 치르고 나면 체중이 2~3㎏씩 빠집니다. ‘귀신한테 쫓기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의 표현하기 힘든 긴장감을 느껴요. 그런데 끝내고 났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이지 짜릿하거든요. 올림픽은 매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끝에 ‘이왕이면 2024년 올림픽까지 나가 올림픽 출전사로 20년을 채우는 것은 어떻겠냐’고 농담 섞어 물었다. 진종오는 “국내 선발전을 버텨내면 해보겠다”고 선선히 대답했다. “외국에는 1963년생 선수도 있어요. 근데 눈으로 보는 게 첫 번째인 종목이라 노안이 오는 순간 끝이라서, 하하….” 그는 요즘 지도자 생활에 부쩍 관심이 간다고 했다. “제2의 진종오요.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죠. 국내 지도자도 좋고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사격 기술을 전수해주고도 싶어요. 멋진 삶 아닐까요.”
사진=송은석기자
진종오 프로필
△1979년 춘천 △2002년 경남대 경영학 학사 △1993년 사격 입문(남춘천중 2년) △1995년 선수 생활 시작(강원사대부고 1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10m 동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 50m 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10m 동 △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금, 10m 은 △2009년 창원월드컵 10m 본선 세계신기록(594점)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50m 은 △2010년 체육훈장 청룡장 △2012년 런던올림픽 10·50m 금 △2013년 대한민국체육상 경기상 △2014년 그라나다세계선수권 50m 본선 세계신기록(583점)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10m 동 △2015년 창원월드컵 10m 결선 세계신기록(206.0점) △2016년 리우올림픽 50m 금 △2017년 뮌헨월드컵 50m 결선 세계신기록(230.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