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개봉된 영화 ‘아저씨’에서 특수부대 출신의 원빈은 악당의 본거지에 들어가 현란한 무예로 상대를 제압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가 작은 단도 하나로 순식간에 악당을 무찌르는 장면은 일명 ‘원빈 액션’으로 불릴 정도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뭇 남성들의 부러움을 샀던 싸움 기술이 바로 동남아에 널리 보급된 ‘펜칵실랏(pencak silat)’이라는 전통무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네팔의 구루카 용병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특수부대와 경호원들의 호신술이 될 만큼 오랜 명성을 자랑한다.
펜칵실랏은 동남아 지역의 전통무술로 ‘예술적으로 방어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실랏이라의 어원은 인도의 무기술인 실람밤(Silambam)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인도 무술인 칼라리파야트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전파됐고 수마트라의 메낭카바우인들에 의해 현재 스타일로 정착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입문생들이 며칠 동안 금식하거나 허브차를 마시는 등 마음을 수련하는 의식을 거치는 것도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무속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곳에서 무예를 연마했다는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
펜칵실랏의 동작은 호랑이나 독수리·원숭이 등 동물의 움직임을 응용한 것이지만 지리적·종교적 영향을 받아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육지에서는 안정적인 삼각형 보법을 사용하고 해안가에서는 배의 난간에서도 싸울 수 있도록 일자 보법이 동원되는 식이다. 펜칵실랏은 영적, 자기방어, 문화·예술, 스포츠 등 네 가지 영역을 기본으로 삼았는데 다른 무예와 달리 동작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성을 최대한 중시한다. 결혼식이나 큰 축제가 열리면 펜칵실랏을 시연하거나 부족 간 분쟁해결 과정에 등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다만 스승이 제자를 선택해 전수하는 전통적 승계방식을 고집해 후대에 온전하게 전해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막된 ‘2018 아시안게임’에서 펜칵실랏이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무예 기술의 아름다움을 따지는 예술 종목과 대련 종목에 걸쳐 1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는데 몇 년 후에는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도 꿈꾸고 있다. 태권도에 이어 아시아의 전통무예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어엿한 스포츠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