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그들은 왜 소리내 울지 않는가

정민정 성장기업부 차장




1977년 태어난 K씨는 지방대를 다녔다. 졸업 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취업 문이 좁아진데다 지방대 스펙으로는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몇 년간 취업 전선을 전전하다가 휴대폰 부품 제조 업체에 들어가 10년을 악착같이 일했다.

중국산이 밀려들면서 회사 경영은 악화했고 4년 전 고연차를 대상으로 진행된 정리해고를 버텨내지 못했다. 퇴직 후 휴대폰 매장을 차려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퇴직금만 날리고 사업을 접었다. K씨는 낮에는 배달 아르바이트, 밤에는 대리기사를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전세금 대출에 초등학교 남매의 학원비를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힌다.

몇 년 전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라는 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가 그린 이 시대 50대 인생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1955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약 900만명의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상으로 한다. 책을 쓴 계기가 된 ‘58년 개띠’ 대리기사 김명준씨는 공고와 전문대를 거쳐 1985년 중견 건설회사에 기능공으로 입사했다. 25년 차 늦깎이 부장이던 그는 경쟁 대열에서 밀려 결국 회사를 떠나야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소득절벽인 ‘크레바스’ 앞에서 속수무책이었고 자식들을 위해 퇴직금만은 까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대리기사로 나섰다. 송 교수가 김씨를 만난 것은 2012년 가을, 1958년생인 김씨는 당시 55세였다. 그로부터 2년 전 실업자 신세가 됐으니 53세에 회사를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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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8년 경기 악화와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의 상당수는 1970년대에 태어난 40대다. ‘40대의 추락’은 각종 통계에서 확인된다. 40대 취업자 수는 7월 667만1,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14만7,000명 줄었다. 1998년 8월(-15만2,000명)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2015년 11월(-1만2,000명) 이후 40대 취업자 수는 33개월 연속 감소 추세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각각 10개월·6개월 연속으로 줄어든 것이 고작이었다. 이들은 20대에 맞은 외환위기로 전(前) 세대보다 힘겹게 직장에 들어간 ‘청년 취업난 1세대’다.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고용 불안에 시달렸고 이제는 ‘고용 쇼크’의 직격탄을 맞아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실업의 고통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각종 대책에서 40대는 소외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후 두 차례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58조원에 달하는 일자리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대부분 청년 취업·창업 지원과 노년층 일자리에 집중됐다.

송 교수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베이비부머가 부모와 자녀의 부양을 온전히 책임지며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세대라고 탄식했다. 40대는 묻는다. 그래도 50대 당신들은 경제 발전의 ‘과실(果實)’을 누리지 않았냐고, 우리는 사회에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위태로운 칼끝에 서 있다고. 그 칼끝에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지도, 소리 내 울지도 못한다고. 그래서 너무 외롭고, 아프다고 말이다.
/jminj@sedaily.com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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