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커리어를 인커리지(encourage)하는 게 제 지난 27년 경력에 비춰봤을 때 가장 의미 있고,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시장이 원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국내 최초로 여성을 위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인 ‘헤이조이스(Hey Joyce)’를 만든 이나리(사진) 플래너리 대표는 헤이조이스를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7월 초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가오픈한 헤이조이스는 오는 9월 1일 정식 오픈을 앞두고 있다.
아직 헤이조이스가 정식 운영되기 전인데다 이번이 이 대표의 첫 창업임에도 헤이조이스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헤이조이스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이 대표의 이력은 더욱 시선을 끈다.
◇삶의 주도권을 위해 분투한 27년
이 대표는 자신의 27년 커리어를 ‘내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고자 분투한 27년’이라고 말한다. 평기자로 시작해 다양한 매체들을 거쳤고 중앙일보에서는 논설위원을 역임하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인 ‘디캠프’의 초대 센터장을 맡았다. 이후 지난해 말까지 제일기획 임원으로 재직하며 ‘이제는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창업 아이템을 정하기까지 이 대표의 고민은 깊었다. “공간과 콘텐츠가 결합된 것을 선보이고 싶었지만 ‘WHY’라는 의문이 계속 남았다.”
이 대표는 “제일기획 재직 기획 중에 여러 좋은 오퍼들을 받으면서 아직도 ‘어린 여자가’라는 평가가 따라 붙는 걸 들으면서 내가 일을 시작한 27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그동안 여성 후배들에게 남자가 일하는 것의 150%를 일해야 한다고 코칭했던 것도 반성하게 됐고 여성이, 스스로 원하는 일을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신만의 커리어 패스를 그릴 수 있는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이 대표는 생각했다.
“같은 회사에 입사한 남성과 여성이 각자 생각하는 미래상이 너무 다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들은 임원까지 꿈꾸지만 여성은 과장까지만 꿈꾼다고 합니다. 왜냐면 본인이 할 수 있다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여건에 있기 때문입니다. 헤이조이스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커리어를 가진 여성들을 만날 수 있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베타서비스 기간에 콘조이스(다양한 인스파이러를 만나는 기회)에 참가한 멤버들이 다들 ‘이런 여자들이 다 어디 있다가 나왔나. 내 주변엔 없는데’라며 깜짝 놀라요.” 헤이조이스의 멤버 구성도 여성 현직자 비율이 낮은 IT업계, 벤처캐피탈리스트, 법조계, 대기업 등에 종사하는 멤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자들만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 ‘헤이조이스’
헤이조이스는 다양한 분야에서 도전과 성취를 이룬 다양한 여성들을 ‘인스파이러’로 정하고 헤이조이스의 멤버들이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자극받게 돕는다(‘콘조이스’). 이 대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50여명의 다양한 인스파이러들이 내년 9월까지 활동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부터 필라테스 전문가까지 모두 다양한 분야에서 ‘톱’ 평가를 받는 여성들이라고 이 대표는 자신한다. 이들은 헤이조이스의 ‘명예 회원’으로서 회비를 내지 않고 헤이조이스를 이용할 수 있다.
콘조이스 말고도 헤이조이스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매달 새로 등록하는 멤버들을 위한 웰컴 파티 겸 커뮤니티 빌딩 플랫폼 ‘밋조이스’, 이직, 창업, 직무역량강화 등을 위한 ‘런조이스’ 외에도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관련 브랜드, 액티비티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익스조이스’가 있다. 헤이조이스가 제공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해 뭔가를 자발적으로 해보고 싶은 멤버들에게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헤이조이스는 공간과 커뮤니티 그리고 콘텐츠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핵심은 커뮤니티와 콘텐츠다. 이 대표는 ‘커뮤니티 빌딩’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이 대표는 여성이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아직도 주어진 일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여성들이 많다”며 “학교 다닐 때 남성보다 더 공부 잘 했던 여성들이 왜 30대가 넘어서부터는 직장에서 안 보이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기회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다. 조직의 리더들은 대부분 남자고 술자리에서 남자들끼리의 멘토링이나 코칭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며 “헤이조이스는 여성들이 강력한 커뮤니티 속에 스스로 소속될 수 있게 돕는다”고 말했다.
헤이조이스는 유료로 운영된다. 3개월에 45만원, 1년에 150만원의 회비를 내야 다양한 서비스들을 누릴 수 있다. 이같은 가격 책정에 대해 이 대표는 “헬스 클럽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자기 계발에 쓰는 돈이 연봉 3,000만원 기준으로 30~40만원 정도라는 통계가 있는데 한달 15만원을 내고 헤이조이스를 잘 활용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충분히 감당할만한 금액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소했던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
여성을 위한 프라이빗 멤버십 클럽은 외국에서는 전혀 생소하지 않다. 미국에는 페미니즘을 앞세운 여성 전용 커뮤니티 ‘더 윙(The Wing)’이 있고 영국에는 여성 창업자들을 위한 커뮤니티 ‘올브라이트(All Bright)’가 있다. 캐나다에도 ‘레모네이드(Lemonade)’란 이름의 여성 전용 커뮤니티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젠더 의식은 이들 국가보다 20년 뒤처져 있다는 게 이 대표의 평가다. 이런 가운데서 헤이조이스를, 그것도 첫 창업으로 선택한 이 대표의 소회는 어떨까.
이 대표는 “창업은 매일 매일 견디면서 버티는 것”이라며 “특별히 영웅심을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긴장과 걱정 속에 매일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좋은 회사를 만드려고 애쓰는 것이 곧 사업이라고 생각한다”고 생각을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헤이조이스가 국내에서 여성들이 일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일하는 여성에게 ‘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으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살아남는 방법밖에는 없다”며 “이를 위해 헤이조이스에서 좋은 커뮤니티가 차근차근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헤이조이스의 주 목표인 여성의 커리어를 격려하는 것에서 나중에는 성인 교육, 컨설팅, 창업 엑셀러레이팅까지도 비즈니스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초대 센터장을 맡았던 디캠프가 만들어진 후 아산나눔재단의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등이 들어서며 이 동네의 색깔이 바뀌었다. 헤이조이스는 디캠프에서 도보 2분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많은 창업자 뿐 아니라 이 대표 스스로에게도 수혜가 돌아온 셈이다. 헤이조이스가 뿌리 내리고 숲을 이루면 그 수혜는 어느 범위까지 미칠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