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바넘:위대한 쇼맨’(이하 ‘바넘’)의 주인공으로 나선 유준상을 만났다. 뮤지컬 ‘바넘’은 서커스를 지상 최대의 엔터테인먼트로 만들고 쇼 비즈니스를 자신의 생업으로 삼은 남자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생애를 담은 작품. 유준상은 박건형 김준현과 함께 쇼가 삶의 전부이자 스스로를 ‘사기꾼’이라 칭하는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 역을 맡아 무대에 오른다.
유준상은 뮤지컬 ‘그리스’ 이후 10년 만에 쇼뮤지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쇼뮤지컬이니까 ‘이번엔 울 요소들이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바넘’의 생애와 자신의 삶이 겹치는 부분은 많았다.
“처음에 대본 봤을 때도 슬프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 한 순간 펑펑 울게 되더라고요. 바넘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는거죠. 누군가는 큰 굴곡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모든 이들에겐 고비가 있잖아요. 이 작품은 제가 살아온 인생을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묘한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유준상의 감성을 건드리는 지점은 크게 가족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바넘이 쇼 비지니스를 그만두고 정치를 하다가 아내가 죽고, 이후에 다시 쇼 비즈니스로 와달라고 하는 장면의 폭풍은 강렬하다. 그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노래할 때 많이 울게 된다”고 전했다.그러면서 “ 한 사람의 인생사를 마주하게되면 관객들도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과 만나는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고 공감을 기대했다.
“인생이 담겨져 있는 뮤지컬이에요. 바넘 한명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아, 나한테도 이런 순간이 있었지. 그래 맞아’ 하고 수긍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요. 바넘의 업적에 집중한 게 아닌, 인생의 흐름에 집중했어요. 내가 살아오면서 그동안 무대에서 쏟았던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실존 인물인 ‘P.T 바넘’은 평가가 상반되는 인물이다. 쇼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귀재란 긍정적인 면모도 부각되지만, 인종차별주의자나 희대의 사기꾼 등 부정적인 꼬리표도 따라 붙는다. 유준상은 “뮤지컬 속에서 절대 미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극에서 ‘나는 사기꾼’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바넘과 관련해 여러 이슈들이 있어요. 미국에서도 여전히 반반의 평가죠. 제임스 베일리와 바넘이 만든 ‘지상 최대의 쇼’가 작년에 끝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한 공연이 150년이 이어졌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단은 ‘미화는 시키지 말자’는 게 저희 제작진부터 모든 배우들의 생각이었어요. 극에서 ‘나는 사기꾼’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요. 사기꾼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바넘은 이런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미화일 수 있죠. ‘사기꾼’이라고 인정한다. 그 부분이 큰 차이라고 봐요.
바넘은 모든 것을 홍보에 사용했고 누가 뭐래도 자신을 믿었어요. 실제로 바넘이 망했을 때 톱스타가 된 단원이 먼저 바넘을 찾아와서 자신의 매니저를 해달라는 식으로 재기에 도움을 줬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근거로 해서 영화와도 또 다르게, 한 인물의 일대기를 그리게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뮤지컬 ‘바넘’은 스몰 라이선스로 이성준 음악감독의 편곡 작업을 거쳤다. 무엇보다 최종 각색본이 유준상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휴 잭맨이 주인공으로 나온 비슷한 영화의 그림자, ‘미화’라는 후폭풍 역시 있었기 때문에 신중 할 수 밖에 없었다.
“결정이 아주 늦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최종본이 너무 재밌는 거예요. 각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기다렸던 이성준 감독이 하시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결정하게 됐죠. ‘프랑켄슈타인’을 같이 했던 분들이라 믿음이 갔죠. 그 분들과 아니면 못할 것 같다고 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정이 났고, 스몰 라이선스만 사서, 반은 창작이라 함께 만들어갔어요.”
화려한 쇼만이 아닌 이야기의 균형에도 신경을 쓴 작품이다. 유준상은 “쇼와 이야기의 균형이 잘 이뤄진 이 작품의 메시지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원래는 소극장 뮤지컬이어서 대극장으로 오면서 볼거리도 있어야 하고, 원작 ‘바넘’의 원래 음악이 굉장히 좋은데 거기에 오케스트라가 들어가면서 쇼 뮤지컬의 느낌이 훨씬 많이 살고, 서커스도 잘 들어왔고 이야기도 잘 됐고요. 무대와 서커스가 있고, 이야기, 음악, 쇼, 연기가 합쳐져서 ‘잘 흘러간다‘, ‘볼만하다’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바넘이라는 한 인물만 보기보다는 이 사람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한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극 중에 코믹한 요소도 많으니까 즐겁게 관람하실 수 있을거라 봐요.”
바넘은 성공과 실패를 계속 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전했고, 희망을 잃지 않았다. 결국 수 많은 시련을 이겨냈다. 바넘의 인생사는 결국 관객의 인생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순간을 선사한다.
“쇼 뮤지컬인데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아요. 바넘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게 참 좋았죠. 관객분들도 쇼를 즐기다 어느 순간 자신의 인생과 만나는 부분이 생길 거라 생각해요.굳이 감동이 아니더라도 자기 인생을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묘한 지점이 있어요. 세상에는 저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쇼의 한 부분이란 생각도 하실 수 있어요. 좋은 일도 힘든 일도 있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95년 SBS 5기 공채 탤런트로 활동을 시작한 유준상은 1998년 ‘그리스’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 뮤지컬 배우 20년차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쉰 살이다. 최근 음원 ‘서든리(Suddenly)’를 발표하고, 뮤지컬 ‘바넘:위대한 쇼맨’에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바넘’은 보통 뮤지컬의 두세배의 대사 양을 자랑 할 뿐 아니라, 1막에는 거의 퇴장이 없어서 더 많은 연습을 요했다. 게다가 한국 초연이고 재창작이다 보니까 해야 할 것들은 2배로 늘어났다. “연습만이 살길이다”는 마음으로 죽기 살기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의 뮤지컬 인생은 늘 ing 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소극장이라 배우들이 많이 안 움직이는데 우리는 대극장을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체력이 안 받쳐주면 안 되겠더라고요. 해서 하루에 이만 보씩 걷다가 몇 달 전에 얼굴에 대상포진이 걸리기도 했어요. 저를 보시고 늘 열정이 넘친다고 하시는데, 저도 무대 뒤에선 힘들어해요. 그런데 무대에만 서면 힘든 순간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연습만이 살길이죠.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무대에서는 이미 끝났을 것 같아요.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절대 물러서선 안되죠. 저 먼 자리에서도 나를 지켜보는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계속 힘을 내야죠.”
한편, 뮤지컬 ‘바넘:위대한 쇼맨’은 오는 10월2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