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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흔들리며 핀 명장 김학범·박항서…둘 중 하나만 웃는다

김학범의 한국 vs 박항서의 베트남, 29일 저녁 준결승전

김, 특유의 리더십으로 팀 운영

박, 히딩크식 지도로 베트남 키워

선수시절 지나 뒤늦게 주목 받아

두 감독의 전략 대결도 관전포인트

김학범 한국대표팀 감독(왼쪽)과 박항서 베트남대표팀 감독. /연합뉴스김학범 한국대표팀 감독(왼쪽)과 박항서 베트남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학범슨’과 ‘쌀딩크’의 한국인 사령탑 더비가 펼쳐진다.

29일 오후6시(이하 한국시각) 인도네시아 자와바랏의 파칸사리 스타디움에서 열릴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준결승은 선수만큼 감독 얼굴에 눈길이 가는 한판이다. 지난 27일 김학범(58) 감독의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에 4대3 신승을 거둔 데 이어 28일 끝난 시리아와의 8강에서 박항서(59) 감독의 베트남이 역시 연장 끝에 1대0으로 이기면서 운명의 4강 맞대결이 성사됐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감독으로 부임해 올 초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박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도 베트남을 사상 첫 8강에 이어 4강까지 끌고 가며 더 강력해진 ‘박항서 매직’을 선보이고 있다.


‘학범슨’과 ‘쌀딩크’의 만남이다. 김 감독은 성남 감독으로 K리그를 평정하던 시절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빗댄 학범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계적 명장 퍼거슨의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분석에 능하다는 뜻이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의 거스 히딩크라는 의미에서 쌀딩크로 불린다. 베트남이 세계 최대 쌀 수출국 중 하나라는 사실이 곁들여진 별명이다.

둘 다 화려하지 않은 선수 시절을 지나 뒤늦게 전성기를 맞은 케이스라 더 화제를 모으는 만남이다. K리그 감독 간 맞대결에서는 김 감독이 8승1무1패로 앞서 있다.


수비수 출신의 김 감독은 프로 무대를 밟지 못했다. 실업팀 국민은행에서 은퇴하고 잠깐 은행원으로 일하기도 한 그는 지도자 생활을 결심하면서 다시 축구계에 발을 들였다. 1996애틀랜타올림픽 대표팀 코치로 일한 그는 성남 코치로 K리그 3연패, 감독으로 2006년 우승하면서 비로소 이름을 떨쳤다. 이사이 축구 훈련법에 대한 논문으로 명지대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성남 지휘봉을 놓은 뒤에는 ‘지략가’ ‘공부하는 감독’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유럽과 브라질 등에서 축구 유학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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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 승리 뒤 눈물의 인터뷰는 아직도 화제다. 무뚝뚝한 인상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김 감독은 “선수들이 잘해줬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조별리그 말레이시아전의 충격 패(1대2) 뒤 감독 탓이라고 선선히 인정한 뒤 팀을 빠르게 추슬렀다. ‘인맥축구’라는 일부 비판을 딛고 뽑은 성남 시절 애제자 황의조(감바 오사카)는 두 차례 해트트릭을 포함해 5경기 8골로 득점왕을 예약했다. 28일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단일 국제대회에서 해트트릭 2회 달성은 한국 남자 축구 사상 황의조가 최초다. 그는 아시안게임 단일 대회 최다골(1994년 황선홍 11골) 경신에 도전한다. 이쯤 되자 일부 팬들은 황의조의 생일인 28일을 ‘킹의조 탄신일’이라며 축하하고 있다.

8강에서 2도움을 올린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의 역할과 교체 멤버 이승우(엘라스 베로나)의 선발 여부 등도 관심이지만 걱정은 수비 불안이다. 미드필드에서 볼을 끌다가 뺏기는 바람에 가슴 철렁한 순간을 여러번 겪었다. 8강전 진땀승 뒤 자책의 울음을 터뜨리는 수비형 미드필더 이승모(광주)를 캡틴 손흥민이 붙잡고 다독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미드필더 장윤호(전북)의 부상으로 이승모의 역할이 더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부상에서 회복 중인 주전 골키퍼 조현우(대구)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송범근(전북) 사이의 선택 등에서 김 감독의 지략은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미드필더 출신의 박 감독은 럭키 금성에서 우승을 경험하고 태극마크도 달아봤지만 역시 스타 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표팀 트레이너로 1994미국월드컵에 다녀온 그는 2002한일월드컵에서 수석코치로 4강 신화를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이후 2002부산아시안게임 감독도 맡았으나 박지성·이영표·이동국 등의 멤버로 동메달에 그치는 실패를 겪었다. 별 볼 일 없던 경남을 2007년 K리그 4위로 이끌며 다시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뒤로 상주 상무와 3부리그 격인 창원시청을 거치며 축구 인생의 내리막으로 접어든 듯했다. 지난해 가을 베트남 감독 취임은 ‘신의 한 수’였다. 박 감독은 약팀 한국에 무시 못할 ‘한 방’을 입혔던 히딩크 식 지도로 베트남 축구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전형적인 선수비, 후역습 전략에 터프한 스타일이 덧입혀졌다. 안정감이 돋보이는 골키퍼 부이티옌덩을 앞세운 베트남은 이번 대회에서 1골도 내주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판정에 물병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다가 지친 선수들에게 분주하게 물병을 나눠주는 박 감독의 열정적인 모습에 선수들도 걸음을 맞춰가는 모양새다. 베트남 언론들은 박 감독의 용병술에도 열광하고 있다. 8강 후반 37분에 박 감독은 16강전 결승골의 주인공을 빼고 응우옌반또안을 투입했는데 그는 연장 후반 결승골을 터뜨렸다.

박 감독은 “조국을 사랑하지만 베트남 감독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 2002년 월드컵 때는 4강에서 멈췄지만 이번에는 4강에서 멈추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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