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군 매포읍 우덕리에서 6년간 벼농사를 지어온 안종모(56)씨는 ‘물폭탄’을 경험한 요 며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1년 농사가 허사가 되면서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폭우 탓에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서 불어난 물이 그의 논을 덮쳤다. 농경지가 물에 잠기면서 유례없던 올여름 폭염 속에서도 몸 사리지 않고 돌봤던 벼를 모두 버려야 할 판이다. 4,958㎡ 규모의 안씨 논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00㎡가 물에 잠겼다. 물을 가까스로 빼냈지만 수확기를 앞뒀던 벼가 바닥으로 힘없이 누워버렸다. 자식같이 키운 벼가 폭탄을 맞은 듯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분통이 터진다. 마지막 결실을 앞두고 탐스럽게 영글어가던 벼는 이제 쓸모없게 됐다.
안씨는 “폭염과 가뭄을 겨우 버텨내 곧 수확을 앞두고 있었는데 폭우로 1년 농사를 망쳤다”며 “건질 게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충북의 대표적인 복숭아 주산지인 음성군 감곡면 상평리에서 30년 가까이 4만2,000여㎡ 규모의 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한재식(55)씨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그는 올해처럼 농사짓기가 힘든 적이 없었다며 하늘을 원망했다. 그는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쏟아진 물 폭탄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복숭아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의 과수원에는 한 그루당 수확을 앞둔 복숭아 수십 개가 떨어져 땅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는 처음입니다. 여름에는 너무 뜨겁고 가뭄이 극심해 걱정이었는데 이번엔 비가 너무 많이 와서…날씨 변덕에 한해 농사를 망쳤어요.” 이어 한씨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비가 쏟아졌다”며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면 낙과도 낙과지만 당도가 떨어져 시장에 내놔도 상품성이 없어 팔리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농민들의 걱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폭우로 습기가 더해지며 병충해가 창궐하는 것도 걱정해야 한다. 한씨의 과수원에서는 떨어진 복숭아 중 일부가 그대로 땅에서 썩고 있었다. 충주시농업기술센터 진정대 과수연구팀장은 “이번 폭우로 낙과 피해는 물론 탄저병 등이 급속히 번지면서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피해예방을 위해서는 농가의 철저한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숭아 농사 베테랑인 한씨에게 있어서 올 한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올 한해 이른 봄부터 냉해와 폭염, 집중호우 등 기상이변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전년도보다 수확량이 30%가량 줄어들 것으로 한씨는 예상했다. 한씨는 “농민들이 모두 올해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며 “다른 과일도 사정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불과 사나흘 새에 수백㎜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애써 키운 농작물 수확을 포기해야 하는 충북 북부지역 농민들은 망연자실하다. 그나마 물이 빠진 안씨의 논과 달리 인근 깨밭은 아직도 물조차 빠지지 않은 상태다. 물에 잠긴 밭작물들은 흙으로 범벅돼 이번 집중호우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지난 26일부터 사흘간 충북은 단양 226㎜, 영동 207㎜, 제천 195㎜, 보은 190㎜, 옥천 183㎜ 등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파악된 충북의 농작물 피해면적은 86개 농가 32.9㏊다. 종별로 보면 벼 14.2㏊, 복숭아 3.6㏊, 콩 3.4㏊, 포도 2.5㏊, 배추 1.8㏊, 블루베리 1.5㏊, 사과 1㏊, 인삼 0.4㏊, 기타 4.5㏊가 폭우로 인한 침수나 낙과 등으로 피해를 봤다.
폭우 피해가 커지면서 충북도는 농작물 피해조사를 하고 복구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침수지역을 중심으로 긴급 배수는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이지만 추가로 비가 또 내릴 위험이 있어 기상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병해충 방제와 신속한 복구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승희인턴기자 shhs950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