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군주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국민의 소유물과 여성을 약탈하는 행위’를 꼽았다. 이러한 행위는 군주에 대한 국민의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음모를 만들며, 그 음모는 정부를 무너뜨릴 힘을 지닌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세상이든 무슬림의 세계이든, 그 어떤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든 관계없이 극심하고 폭압적인 정부의 부패는 시민의 극단적인 폭력적 반응을 피할 수 없었음은 시대를 초월해 역사가 증명해 준 팩트다. 물론 군주의 의도와 다른 약탈도 있다. ‘최측근’이라 불리는 자가 부리는 행패가 더 심한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를 알아보지 못한 책임은 군주에게 있다.
미국 내셔널퍼블릭 라디오 특파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왔다가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 그대로 눌러앉은 저자는 탈레반 축출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후견 국가를 자처한 미국 역시 ‘실패한 군주’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자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미국 군인 및 정치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흔히 하는 실수로 ‘신뢰할만한 중개인을 선정한 뒤, 그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는 것’을 꼽았다. 이어 “수천 년간 외세의 침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중개인의 지위를 획득해 자신만의 특권을 누리는데 익숙하다”고 진단했다.
소위 ‘정치운동가’들이라 칭한 이 사람들은 서구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외부인들은 이들의 탁월한 견해에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의 실상은 말과 달랐다. 여전히 부패했고, 억압한다. 아울러 외부인이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주문들을 만나는 것 자체를 혐오한다. 외부인은 마치 간신들에 둘러싸인 왕처럼 외부와 고립됐고, 억압받는 주민들은 분노의 화살을 부패한 정부를 지원하는 외세로 돌렸다.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저자 역시 이같은 부패 메커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NGO를 구성해 자금을 지원받고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형 카이엄과 함께 학교를 건설하려 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중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공사자금이 카이엄의 주머니로 흘러갔고, 자제를 납품한 공급업체는 대금을 한푼도 지급받지 못하면서도 ‘대통령의 형’이라는 권력 앞에 아무 말도 못했음을 깨달았다”며 “피해자 대부분은 탈레반의 도주와 함께 등장한 이 미국인(저자)을 부패에 가담한 세력으로 믿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저자는 아프간에 체포된 탈레반 수감자들을 만나며 이들의 분노가 ‘외세의 침략’ ‘이슬람적 교리 파괴’가 아님을 깨닫는다. 부패한 관리와 악랄한 일당독재, 이로 인해 일어나는 국민의 피폐한 삶이 원인이었다. 친미, 반미 양 극단의 10%가 번갈아가며 권력을 잡지만 나머지 80%는 절망 속에서 신음했다. 이들의 종교였던 이슬람 지도자마저도 나머지 80%에 속했다.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동유럽 등에서 부패하고 혼란만 가중하는 민주주의 대신 나라를 그럭저럭 굴러가게 만드는 독재자를 바랐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부패의 축은 견고하다. 민중을 억압하는 경찰만 썩은 게 아니다. 경찰 위에는 정부 관료, 관료 위에는 대통령의 최측근, 측근 위에는 대통령이 존재했다. 저자는 미국이 부패한 현지 정부의 후견국 역할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