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9·9절)을 맞아 방북설이 제기됐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이 무산됐다. 대신 시 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중국 지도부 서열 3위인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이하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찾는다.
4일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리 위원장이 오는 8일 대표단을 이끌고 9·9절을 축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방북 인사로는 최고위급이다. 김 위원장 집권 후 방북한 최고위급 중국 인사는 당시 권력서열 5위였던 류윈산 상무위원으로 지난 2015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석한 바 있다. 이날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북한의 초청에 따라 리잔수 동지가 시 주석의 특별대표로 8일부터 정부 대표단을 인솔하고 북한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당초 9·9절에 맞춰 방북할 가능성이 제기됐던 시 주석은 최근 중·아프리카 협력포럼 정상회의 등 국내 일정이 산적한 데다 미국과의 갈등 악화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직접 북한을 방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배후설’을 거론하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을 잠정 중단한 상황에서 시 주석이 방북에 나서는 것은 외교적 부담이 크다는 점이 리 위원장 방북의 배경이 됐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시 주석이 직접 방북할 경우 최근 북핵 협상 교착에 대해 공개적으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해온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도발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 정부는 리커창 총리에 이은 서열 3위 리 위원장을 보냄으로써 김 위원장에게 성의를 표시한 것이라는 관측이 베이징 외교가에서 흘러나온다. 한 소식통은 “관례에 따르면 서열 5위인 왕후닝 상무위원이 가야 하는데 시 주석이 당과 정부를 함께 대표할 수 있는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보내면서 김 위원장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지도부 서열 3위라는 최고위급 인사의 방북을 결정한 만큼 앞으로 북핵 협상을 둘러싼 ‘중국 책임론’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리 위원장이 북한 열병식에 김 위원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낼지도 주목된다. 북한이 무력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는 자리에 중국 지도부가 함께할 경우 대외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일각에서는 리 위원장이 이번 방북 기간에 김 위원장과 만나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의 중재를 시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