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평창 파견근무를 마치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배치됐다. 그리고 8월. 4년 같던 4개월이 지나고 벌써 정부 예산안의 막바지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수많은 실수와 수습, 그리고 고민이 녹아 있는 내 인생의 첫 예산안. 뿌듯했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나 역시 공무원은 민간 기업보다 덜 부담스럽고 업무 강도도 덜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첫 두 달은 내 생각대로 흘러갔다. 이때는 예산안 편성을 위해 자신이 담당한 부처에 대해 알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내가 담당한 소방청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온갖 자료를 탐독하고 소방서·중앙소방학교·특수구조대 등 현장에 방문하며 나름 즐거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정말 중요한 때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예산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6월이 되자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부담감이 나를 찾아왔다. 예산은 정책의 완성. 아무리 좋은 정책도 예산이 투입되지 못하면 시행될 수 없다. 즉 내 판단에 의해 정책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고, 또 내 소관 부처인 소방청은 안전 관련 부처이므로 나의 잘못된 판단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게다가 수습사무관도 검토의견을 실·국장님 앞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예산실의 독특한 의사결정 시스템은 정말 부담스럽다. 선한 부담감 앞에서 나는 저녁과 주말에도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섣부른 판단을 할까 두려웠다. 다행히 고민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심의장에서 나의 판단이 실·국장님께 인정받을 때, 그리고 내 검토의견으로 인해 소방청뿐 아니라 다른 부처의 예산 절감에도 기여했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2019년 예산안 숫자를 마무리 짓고 모두가 박수 칠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안 됐지만 공무원의 삶을 경험하고 보니 막중한 책임감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어놓고 일해온 모든 선배 공무원들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훌륭한 공무원도 많은데 왜 공무원은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진짜(공무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이런 공무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보람이 우리 공무원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고 이 힘으로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