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유경제 세상 아닙니까. 혼자 하기 어려운 딜(deal)도 공유하고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습니다”
정한설 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PE)대표는 사모투자펀드(PEF)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공유 전략을 내세운다. PEF 종사자들은 엘리트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투자 전문가들이다. 남들이 모르는 딜을 찾거나 남이 가진 딜을 뺏는 게 다반사. 투자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조차 소수정예의 인력들이 아이비리그 학연 등 인맥을 통해 딜에 접근하고 기업을 사고판다. PEF업계에서만 20여년을 일한 정 대표가 정반대의 전략을 역설하는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국내 토종 PEF 중 가장 큰 스틱인베스트먼트를 키워낸 인물 중 한명인 정 대표는 최근 품고 있던 공유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 캑터스 PE를 설립했다.
서울경제신문이 만드는 프리미엄 미디어 ‘시그널’이 정 대표를 만나봤다. 정 대표는 6일 “20여년을 PEF 업계에서 일하면서 수백 개의 딜 투자 구조를 짠 경험이 있다”며 “투자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신생 PE와 서로의 장단점을 공유하면서 상생의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PE의 구조를 같이 짜는 것 뿐만 아니라 업종에 따른 공유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대표는 “캑터스를 비롯해 신생 PE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없는데 특화된 업종별로 전문가를 두고 PE 끼리 공유하면 비용을 줄이고도 더 많은 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식음료, IT, 바이오 등 업종별 전문 PE가 있지만 한국은 시장이 작다 보니 PE가 업종 전문화 전략을 추구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각자 업종별 전문성이 있는 분야를 키우고 협업해 딜을 공유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정 대표가 투자 구조의 해법을 제시해 딜을 이끄는 방식이다.
회사 설립 후 며칠 만에 캑터스와 딜을 함께하고 싶다는 PE들도 생겼다. 20여년 간 PEF 업계에서 일하면서 쌓은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정 대표를 수식하는 또 다른 단어는 세컨더리와 스페셜시츄에이션이다. 국내 투자업계에서 개념조차 생소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그가 구사한 전략으로 캑터스에서도 펼쳐볼 생각이다. 정 대표는 “캑터스에서는 스페셜시츄에이션 전략을 주축으로 하고 동시에 성장을 추구하는 그로쓰캐피탈 전략을 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경영학과 출신이 대부분인 PEF 업계에서 공대 출신 엔지니어로 일했던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다.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포항공대 기계공학 석사, 2001년 뉴욕주립대 MBA를 졸업한 뒤 투자 업계에 뛰어들었다. 삼성생명 해외투자본부에서 외부투자나 인수가 이뤄진 기업에 재투자해 가치를 높이는 세컨더리투자 전략으로 해외 펀드를 운용했다. 지금은 익숙해진 메자닌(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 투자도 당시부터 경험을 쌓았다. 2004년 스틱인베스트에 합류한 이후 벤처조합의 구주를 인수하는 세컨더리펀드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 벤처에서 출발해 성장의 길목에서 ‘죽음의 계곡’을 건너던 기업을 인수해 견실하게 키웠다.
2012년부터는 주로 대기업 구조조정과 경영권 인수합병(M&A)에 집중해왔다. 일시적으로 부실해지거나 전략 수정, 사업재편이 필요한 기업을 살리는 스페셜시츄에이션 전문가로 명성을 알리던 시절이다. 2013년 동부그룹이 위기에 놓였을 때 원익, 큐캐피탈과 함께 동부팜한농을 인수했고 2015년 LG화학(051910)에 매각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렸다. 2016년 이후에는 6,000억 규모의 스페셜시츄에이션 특화펀드를 운용하며 한화(000880) 및 CJ 등의 대기업구조조정 딜을 이끈 바 있다.
PEF업계에 뛰어들기 이전 엔지니어로서 일했던 경험은 그의 투자 철학에 그대로 녹아 있다. 정 대표는 “젊은 시절 6년 동안 엔지니어로 공정개발업무를 일하면서 뿌리산업은 잘 무너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며 “성장성이 있는 해외진출 관련 투자뿐만 아니라 안정성이 있는 뿌리산업에 투자할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임세원 강도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