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은 뛰어나지만 건방져 보이는 아이’. 얼마 전만 해도 이승우(20·엘라스 베로나)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해외 명문 소속이지만 직접 뛰는 장면을 일반 팬들은 접하기 어려웠고 국내 무대에 나설 때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동과 요란해 보이는 세리머니로 입길에 오르고는 했다. 그랬던 이승우는 요즘 ‘국민 귀요미’로 불린다.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가 늘어나면서 활약상이 널리 알려졌고 당돌하게만 보였던 모습에 호감이 더해지면서 ‘볼수록 매력 있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덧입혀진 것이다. ‘코리안 메시’라는 과거의 다소 낯뜨거운 별명보다 ‘뽀시래기(‘부스러기’의 사투리·대표팀의 귀여운 막내라는 뜻으로 쓰임)’로 불리며 젊은 여성팬들에게까지 인기가 확산하고 있다.
화제의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거치며 불어난 관심은 이제 성인 대표팀으로 옮겨갔다. 통쾌한 한일전 선제골 이후 A매치 평가전을 통해 처음 국내 팬들에게 인사하는 이승우는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의 유력한 황태자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벤투 감독은 7일 오후8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릴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 나선다. 한국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데뷔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이승우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일찌감치 병역 문제를 해결한 상태. 2부리그로 강등된 소속팀에서는 이미 주전 도약을 약속받아놓았다. 이번 A매치에서 새 감독에게 눈도장까지 받는다면 그야말로 축구 인생의 ‘꽃길’을 걷게 된다.
이승우는 어린 나이에 일찍이 가시밭길을 경험했던 선수다. 세계 최고의 유망주들이 모인다는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힘겨운 경쟁을 이겨내고 바르셀로나B(2군)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2016년 초까지 2년여간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구단이 18세 미만 선수의 외국 이적 금지규정을 위반한 탓에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승우 등 외국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한 것이다. 징계 기간 이승우는 “앞으로 남은 축구 인생이 18~20년이기 때문에 잘 극복해서 좋은 선수로 발전하고 싶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만 18세가 된 2016년에 징계가 해제됐지만 팀 내 입지는 녹록지가 않았다. 한국 최초의 바르셀로나 1군 데뷔라는 큰 기대가 흐지부지되자 일각에서 ‘거품론’까지 일었다. 이승우는 지난해 여름 출전 기회를 찾아 떠난 이탈리아 세리에A 베로나에서도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반전의 계기는 스스로 만들었다. 지난 5월 교체 투입된 원정 경기에서 명문 AC밀란의 골망을 출렁인 것이다. 이후 선발로 기용돼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2018러시아월드컵 깜짝 발탁까지 내달렸다. 교체 자원으로 월드컵을 경험하기는 했어도 갈증이 컸던 이승우는 아시안게임에서 4골을 터뜨리며 목마름을 해소했다. 손흥민(토트넘)처럼 측면에서 가운데로 툭툭 치고 들어가다 별안간 득점을 꽂는가 하면 드리블하던 선배 손흥민에게 “나와, 나와!”를 외친 뒤 직접 해결하는 등 오른발로 2골, 왼발로 2골을 만들어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거추장스러운 위계를 과감하게 접어두고 크지 않은 키(170㎝)에도 상대 장신들과의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며 어디서든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이승우는 일찍이 한국 축구에 없던 캐릭터다. 유럽 유수의 팀을 거친 벤투 사단이 이승우의 잠재력을 더 잘 끌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큰 이유다. 물론 A매치는 아시안게임과 무게가 다른 무대지만 손흥민·황의조(감바 오사카)·황인범(아산) 등 인도네시아에서 동고동락한 동료들과 함께라 이질감이 적다. 짧지만 강렬했던 월드컵의 경험도 생생하다. A매치 6경기 0골로 코스타리카전에서 데뷔골에 도전하는 이승우는 “짧은 시간 안에 감독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다시 들어올 수 있다. 계속 대표팀에 들어오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벤투 감독은 6일 기자회견에서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가 적은 선수도 필요하면 대표팀에 선발할 수 있다”고 선수 선발 기준을 밝힌 뒤 손흥민의 코스타리카전 선발 출전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