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관절 수술기기 납품업체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수차례 대리수술을 했고 결국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라이프’에서 나온 내용이다.
드라마 속 장면이 현실에서도 일어났다. 부산의 한 정형외과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전문의 대신 수술실에 들어가 1시간에 걸쳐 어깨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절개부터 시술까지 집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환자는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 판정을 받았다.
7일 부산 영도경찰서 등에 따르면 의료기기 판매 영업사원 A(36)씨가 정형외과 원장 B(46)씨를 대신해 집도한 수술은 견봉 성형술이다. 견봉 성형술은 어깨뼈의 바깥쪽 끝 부분을 깎아내 평평하게 다듬는 수술로서 3부위를 절개해 내시경 장비를 통해 염증을 제거하고 뼈를 다듬는 수술이다.
A 씨는 내시경 의료기기에 붙어 있는 소모품을 병원에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수술에 사용되는 내시경 장비를 잘 다룰 수 있었다. 평소 A 씨는 영업을 위해 이 장비를 사용하는 해부학회 등에 참석해 절개법을 배우고 수술실에 들어가 어깨너머로 수술을 배운 것 같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의료 면허증이 없는 A 씨가 1시간 동안 수술을 집도할 때 B 씨는 외래진료 등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혼자 병원을 운영하는 B 씨는 외래진료를 위해 장비를 다룰 수 있고 을의 위치였던 A 씨에게 대리수술을 시킨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수술 후 A 씨와 B 씨 둘 다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지 않았고 환자는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심장이 정지하며 뇌사에 이르게 됐다. 경찰은 A 씨가 이전에도 9차례에 걸쳐 수술실에 들어가는 영상을 확보하고 대리수술 여부를 추가로 확인하고 있다.
지도교수가 전공의에게 수술 실습을 시키는 대리수술 형태는 여러 차례 문제로 제기됐지만 비의료인의 대리수술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의사가 영업사원과의 갑을 관계를 이용해 비 의료인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전언이다.
지난해 한 비뇨기과에서 발기부전 수술을 의료기기 납품업체 직원이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전례가 있다. 한 의료인은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장비를 잘 다루는 것과 수술은 별개다”며 “전신마취 수술을 비의료인에게 넘긴다는 것은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대리수술은 폐쇄적인 수술실 구조상 내부 고발이 아니면 밝혀내기 힘들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에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 법제화 등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의협 등에서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반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솜방망이 처벌도 대리수술을 근절시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개정된 의료관계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보면 대리수술을 시킨 의료인의 자격정지는 3개월이 늘어났지만 6개월에 불과하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 대표는 “면허 없이 의료인 행위를 하는 것이 공공연하게 이뤄지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수술실 CCTV 설치와 처벌 강화 등 단호한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의료계의 자정노력이 없다면 결국 환자가 의료행위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