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리먼 10년 끝나지 않은 금융위기<상>] 이번엔 '아메리카 퍼스트'가 도화선...신흥국 위기 10년전과 '다른 듯 비슷'

美 돈풀어 금융위기 극복하자

다시 금리 올리며 긴축 돌입

신흥국은 부채 급증에 휘청

이달 추가 금리인상 예고에

무역전쟁까지 겹쳐 위기감 고조




미국이 도화선이었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10년. 세계 금융시장에 다시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다음 위기의 진앙으로 지목되는 것은 아르헨티나와 터키 등 신흥국 시장이지만 그 방아쇠를 당긴 것은 이번에도 미국이다. 상황은 10년 전과 다른 듯 유사하다. 10년 전에는 부동산 호황을 타고 급격하게 불어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이 부동산 거품 붕괴로 부실화하면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미국 경제의 급격한 침몰을 불렀다. 지금은 지난 10년 사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글로벌 부채가 취약한 신흥국 경제를 노리고 있다.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미국이 연이어 금리를 올리며 긴축 속도를 높이자 지난 10년간 초저금리 속에 유동성 잔치의 단맛에 길들여진 신흥국들이 잇따라 휘청이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앞세운 미국의 독주 속에 신흥국들은 줄줄이 외환위기와 경기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들은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대대적인 ‘돈 풀기’에 나섰다. 각국 정부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재정을 풀어 빚더미에 올랐고, 기업들은 넘쳐나는 값싼 돈을 끌어 쓰며 부채를 늘렸다. 국제금융협회(IIF) 보고서에 따르면 올 1·4분기 글로벌 부채는 10년 전보다 70조달러 이상 불어난 247조달러(약 27경6,00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대규모 통화 완화에 힘입어 호황기로 접어든 미국이 올 상반기에만 두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본격적인 긴축에 나서자 그동안 값싼 자금이 형성한 거품이 꺼지며 다시 글로벌 금융시장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고금리를 쫓아 신흥국으로 쏠렸던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신흥국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다.


올 5월부터 자본유출이 불거진 아르헨티나의 경우 페소화 가치가 올 들어 50%가량 곤두박질쳤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세계 최고 수준인 60%로 올리는 극약 처방을 내리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을 앞당기는 협의에 나섰지만 이미 불이 붙은 시장의 공포심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터키도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 목사 구금 등을 이유로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추가하면서 리라화 폭락 사태가 지속돼 8월 한 달 동안만 통화 가치가 19%나 떨어지며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터키 역시 지난해 말 8.0%였던 기준금리를 두 배가 넘는 17.75%까지 올렸지만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다. 세계 최대 신용평가기관인 미국 무디스가 지난달 17일 터키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하고 최근 금융기관 20곳의 신용등급까지 낮춰 터키의 국가 부도 가능성은 지난해 말보다 3배 넘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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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이 외환위기에 몰린 것은 근본적으로 경제 펀더멘털이 취약해 경상수지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자 외화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자본유출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IIF에 따르면 신흥국의 외화표시 부채 규모는 2013년 말 4조9,000억달러(약 5,500조원)에서 올 1·4분기 사상 최대 수준인 5조5,000억달러로 증가했다. 아르헨티나는 내년에만 249억달러의 외채를 갚아야 하고 터키는 보유외환 대비 외화부채가 200%를 크게 상회한다.

아르헨티나·터키만큼은 아니어도 남미 경제 대국인 브라질을 필두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네시아도 신흥국 위기에 전염되고 있다. 브라질은 정치 혼란과 대규모 트럭 파업으로 5월 촉발됐던 헤알화 하락이 재점화해 지난달에만 8% 넘게 급락했고 남아공은 9년 만에 경기 후퇴에 빠지며 연초 대비 랜드화가 달러 대비 15% 절하됐다. 금융시장에서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10년을 코앞에 두고 10년 주기 위기설까지 가세해 이들 신흥국에 대한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연준이 오는 26일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릴 것이 확실시되고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확전 일로여서 시장은 한층 요동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다음달 환율보고서를 발표하는 미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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