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는 잊어도 좋다. 배우 이혜리가 영화 ‘물괴’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물괴’는 8개월간의 제대로 된 휴식 후 혜리가 선택한 작품으로,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펼친 첫 스크린 도전작이다.
혜리는 2010년 걸스데이 멤버로 데뷔한 후 가수,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활동을 하며 쉬지 않고 일했다. 2012년 SBS 드라마 ‘맛있는 인생’을 시작으로 연기자로 활동 영역을 넓힌 혜리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 SBS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에 이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이를 통해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이후 SBS ‘딴따라’, MBC ‘투깝스’ 등에 출연했다
MBC 드라마 ‘투깝스’를 통해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영화 ‘물괴’ 속에서 ‘윤겸’(김명민)이 홀로 키운 외동딸 ‘명’을 연기했다. 산속에서 무료한 시간을 버티고자 의술과 궁술을 터득한 인물이다. 영화는 2017년 봄부터 다음 해 여름까지 촬영했다. 2016년 후반부터 2017년 초반까지 혜리는 8개월의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차였다. 혜리는 스스로 “리프레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시간이었다”고 휴식기를 돌아봤다.
“ ‘물괴’ 찍기 전에 잠깐 쉬는 휴식기를 가졌어요. 처음엔 한 두달 정도 쉬겠다고 생각했는데, 8개월 가량을 쉬었네요. 약 5년 정도를 한달에 하루 정도만 쉬고 활동했어요. 가수 활동도 하고, 배우 활동, 예능 활동도 하고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든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였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보던 시간이었어요”
다음 작품은 좀 더 준비가 됐을 때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받은 작품이 ‘물괴’였다고 한다. 그렇게 혜리가 재충전한 후,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에 ‘물괴’가 찾아왔다. 그는 “ 도전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었다.
8개월간의 휴식 후 혜리가 느낀 깨달음은 “난 휴식을 원하는 사람이었다”는 평범하지만 당연한 사실이었다. 스스로 “쉬면 안 될 것 같은데”란 불안감이 마음을 억누르면서 애써 밝은 척 활동을 해왔던 것. 혜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프다는 걸 정신적으로 잘 몰랐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제 성격이 스트레스를 안 받는 성격이라고 자부했어요. 누가 ‘스트레스 받아서 힘들어’ 라고 말하면, ‘스트레스가 뭐야?’ 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모르는 게 문제였어요. 어떤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열도 나고 몸으로 아팠던거였어요.내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어떤 것에 약한지 생각할 수 있던 8개월이었어요. 그러면서 취미도 찾고,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냈어요. 변해가는 제가 정말 신기했어요. 이후 활동을 더 열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좋아요.”
혜리는 “한번 쯤 ‘스탑’ 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라며 기자들에게 휴식을 권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웃는 시간이 10분도 안된다고 하면, 푹 쉬는 게 정답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휴식 전도사의 열의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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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3일 쉬면 큰일 나는지 알았던 사람이 저입니다. 제가 빨리 일해야 할 것 같고, 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쉬고 나니까 ‘나도 쉴 수 있는 사람이었네’란 걸 알았어요. 푹 쉬는 날이 하루 정도는 있어해요. 금쪽 같은 주말에 나가야 할 것 같아서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분이 많아요. 이틀 동안 잠만 주무셔보세요. 되게 좋아요. 여건이 되면 오래 쉬시는 걸 권장 드립니다. 그러다 일을 그만 두실까봐. 거기까진 적극적으로 말씀 못드리겠고. 호호. 일을 ‘스탑’ 하는 시간을 한번 쯤 갖는 것. 연기자에게 뿐 아니라 저란 사람에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혜리는 걸스데이 멤버로도 가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수로 그룹 활동을 하는 것과, 배우로 혼자 활동을 하며 얻은 찬사는 다른 기분을 선사할 법도 하건만, 혜리는 “가수든, 배우든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얼실화이다” 며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인스타그램 밖에 없어요” 라고 말을 이어갔다.
“그룹 활동도 그렇고, 연기도 저 혼자 스스로 한 게 아니에요. 많은 분이 도와주시거든요. 가수도 똑같은 안무 똑같은 노래인데 의상이 다르면 아예 다른 무대가 됩니다. 드라마도 똑같은 대본, 똑같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도, 조명, 의상이 다르면 다 다르게 나와요. 그렇기 때문에 다 같이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을 하면서 칭찬을 받았을 때 ‘진짜 감사하다’ 는 생각과 함께 100여명의 스태프 분들 덕분에 내가 감사인사를 받았구나란 느낌이 들어요. 물론 성취한 뒤에 느끼는 ‘해냈어’ ‘너무 행복하다’ 란 감정은 비슷해요. 그런 칭찬이 힘이 돼서 ‘앞으로 떠 좋은 작품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겨요. ”
연기 6년차인 그는 “배우에겐 캐릭터에 공감하는 능력이 가장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시나리오 상 충분히 설득되는 상황이라도 (배우의 공감도에 따라)설득이 안 될 수 있어요. 그런데 배우가 어떤 것들을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상황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명이와 아버지 윤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 인물을 공감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속에서 디테일한 에피소드는 나오지 않아요. 저는 명이를 보여드려야 하는 입장이고, 또 그걸 저는 관객 분들에게 이해시켜드려야 해요. 그런 마음을 생각하면서 끝까지 가져갔던 것 같아요 ”
도전을 즐기는 혜리는 “나도 좋고, 관객들도 다 좋아하실 만한 작품을 찍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끌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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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때 여배우들이랑 촬영했는데 참 좋았거든요. 여자 선배들이랑 여자들끼리 할 수 있는 얘기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일단 재밌는 이야기에 끌리고, 궁금했던 이야기, 센 캐릭터도 한번 쯤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드라마라면 ‘끝까지 보겠는데’란 마음이 들게 하고, 영화라면 ‘돈 안 아까운데’ 그런 느낌이 들었으면 해요. 관객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봐주신다면 감사해요. 영화를 찍은 사람으로 에너지를 받아서 같이 해 내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많은 분들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한편, 혜리의 차기작은 엄태구 주연의 영화 ‘뎀프시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