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다주택자의 대출을 원천 봉쇄한데다 다음달부터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을 예고하면서 시중은행의 대출 자산 성장에도 급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출 자산이 늘어야 은행 수익도 덩달아 커지는데 은행의 전체 대출자산 가운데 주담대 등을 포함한 가계대출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정부의 9·13부동산대책은 은행의 성장에 치명적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은 이번 9·13대책에 따른 경영 파급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내부 검토에 착수하는 한편 내년 경영계획이나 자산구조 등에 대해 전면 재검토에 나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들은 휴일인 이날에도 은행장 주재로 내부 임원진과 긴급 회의를 잇따라 개최하는 등 9·13대책의 파장에 촉각을 세웠다. 금융당국이 창구 혼선이 없도록 하라고 강력하게 지시했지만 은행 창구는 이미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대출 제한에 따른 문의와 반발이 폭증하고 있어 비상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특히 9·13대책에 따른 가계대출 냉각이 불러올 장기전략 재검토에도 나섰다는 관측이다.
9·13대책에 따르면 기존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면 규제지역에서 신규로 주택을 구입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고 생활자금대출도 원칙적으로는 1억원까지만 가능하다. 금융사 여신심사위원회에서 승인을 받고 ‘주택 구입에 쓰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야 추가로 대출이 된다. 또 부부합산 소득 1억원 이상인 경우 신규 전세대출이 제한된다.
지난해 8·2부동산대책에 따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축소 여파로 주담대 증가세가 위축됐다고 해도 은행권에서 1년간 30조원이 늘었고 전세자금대출은 5대 은행에서만 올해 들어 8개월간 12조원 증가한 점을 감안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개인대출의 경우 담보대출이, 기업대출의 경우 임대사업자대출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은경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주택 거래량이 감소해 은행권 대출 증가세 둔화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주담대 신규 대출 증가폭의 감소뿐 아니라 1주택 맞벌이 부부의 전세자금대출 규제 여파로 전세자금대출에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장 상황을 보며 영업전략을 새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가계대출에 의존해온 그동안의 성장전략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투영된 것이다.
특히 다음달부터 고DSR 기준이 현재의 100%에서 80% 수준으로 강화되는 총량 규제가 본격 시행되면 신용대출이나 기타 대출까지 상환능력을 보게 돼 대출 옥죄기의 여파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제신문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연봉이 4,000만원 미만일 때는 대출 가능 금액이 80%나 급감할 정도로 소득에 따른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A 은행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출 자산을 늘리기 힘든) 여파가 나타날 것으로 보여 경영전략에 반영하도록 했다”며 “글로벌, 투자은행(IB), 중기법인 등에서 다양한 수익원을 만드는 식으로 은행업 환경 변화에 따른 근본적인 성장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B 은행장도 “시중은행들은 주담대를 지속적으로 줄여는 오고 있지만 이번 대책의 영향으로 수조원의 가계대출이 감소할 수 있다”며 비상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나 IB 강화 등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닌데다 기술 중소기업 대출 등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 고민이다. 대출 안정성이 높은 대기업의 경우 은행 대출을 쓸 이유가 크지 않은데다 그나마 대출이 가능한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 간의 경쟁이 치열해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은행 관계자는 “대출 시장 축소로 은행 간 마케팅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개인대출은 실수요를 명확히 판별해 영업을 추진하고 기업대출은 우량 중소기업을 발굴해 선별적인 대출이 취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한정된 가계대출 시장을 놓고 은행 간에 치열한 경쟁이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계대출을 한꺼번에 줄이고 기업대출로 전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이번 규제를 벗어난 대출시장을 놓고 은행 간에 물고 물리는 경쟁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은산분리나 개인정보 등 빅데이터 활용 규제를 확 풀어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관련 기업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은행에 대출 수요를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며 추가적인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