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여명]이해찬 대표, 이제야말로 ‘버럭’ 할 때

서정명 정치부장 vicsjm@sedaily.com

일방통행 靑 참모엔 죽비 들고

관료들 할 말 하는 풍토 만들어

규제혁신·기업 투자 북돋워야

외부 아닌 내부로 '버럭' 기대




지난달 25일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아 취임 한 달을 앞둔 이해찬 당 대표가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잘한다’는 촌평이 나오고 있고 자유한국당 등 보수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예상과 달리 야당과 각을 세우지 않는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지금까지는 ‘무리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제부터 실타래처럼 얽힌 난해한 과제들이 이 대표의 어깨를 짓누르게 되고 국민들은 이 대표의 본실력을 검증하게 될 것이다. 취임 초 80%를 웃돌았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포인트가량 곤두박질친 상태고 덩달아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이 대표가 심기일전해야 하는 이유다. 주위 의원과 동료들의 침에 발린 아첨을 멀리하고 고언(苦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먼저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이 헛구호가 되지 않도록 당 대표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위험하게 실험하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이 역주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구전략은 결국 규제혁파로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북돋아주는 일이다. 소득 성장을 통한 분배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는 규제 올가미를 걷어치워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성장이 빠진 분배정책을 고수한다면 우리 경제는 계속 제자리에서 뒤뚱거리게 된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던 고(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스스로 작성한 묘비 글에서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을 강조했다.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등을 돌린다는 맹자의 말씀을 옮겼다.


현실 여건을 반영하지 않은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참사가 빚어지고 있고 국정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는 것을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 인터넷은행, 원격의료, 개인정보 공개 등 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규제개혁에 대해 민주당 일부 강성의원들이 몽니를 부리고 있어 규제혁신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로 규제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드는 결기를 보여줬으면 한다.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소수 의견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 대표가 ‘버럭’해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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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포위한 청와대 참모진을 향해서는 따끔한 죽비를 들어야 한다. 당정청의 역학관계는 어그러졌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의 분석은 정확하다. “지난 1년 동안 청와대만 있고 여당은 보이지 않았다. 관료들은 갈대처럼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바짝 사리고 있다.” 청와대 경제 참모진 중 정통관료는 윤종원 경제수석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시민단체, 진보 성향 교수들이다. 노동단체 귀에는 달콤한 꿀을 바르지만 기업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한다. 민주당 의원의 또 다른 고백은 직설적이다. “수십 년간 정책을 다뤄온 관료들은 소득성장정책이 고장 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청와대에 찍힐까 봐 찍소리도 못 한다.” 경제 컨트롤타워는 김동연 경제부총리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참모들이 현안마다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두면 공무원들에게 잘못된 신호가 전달된다. 경제정책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가 엇박자를 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대표가 ‘버럭’ 화를 내며 청와대 참모들에게 옐로카드를 꺼내 보여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도 소임을 다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18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비핵화와 종전 선언 빅딜 방안에 대해 협의한다. 북한이 미래 핵과 함께 현재의 핵시설을 폐기해야 종전 선언이나 평화 협정이 가능하다. 혹여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이 제시되지도 않았는데 유엔과의 약속을 깨고 경협을 재개하거나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이 대표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 대표로 한 몸 불사르겠다는 의지다. 국무총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셨던 이 대표는 자신의 소신은 아니었지만 국익을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던 노무현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향해 ‘버럭’하는 이 대표를 보고 싶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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