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부터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조상과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며 가족, 이웃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추석은 생각만으로도 그 넉넉함에 마음까지 풍성해진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7개월 전 울산이 근무지인 회사에 몸담으면서 필자는 ‘울총’(한시적 울산 총각)이 됐다. 짓궂은 친구들은 “주말부부는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며 부러워한다. 아침저녁으로 혼자 밥상을 마주할 때면 아직도 어색하긴 하지만 버틸만 하다. 그러나 막상 밥상을 치울 때, 수저가 한 쌍만 있는 걸 볼 때 지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식구의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낀다. 특히, 입맛이 없을 때면 어머니의 정구지 찌짐(부추전의 경상도 사투리) 생각이 간절하게 난다. 어느 집에서나 먹을 법한 평범한 정구지 찌짐이지만,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전을 식구들과 둘러앉아 나눠 먹었던 기억은 필자의 마음을 데워주는 소중한 추억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언제가부터 집에서도 식구들이 모여 함께 밥 먹기도 쉽지 않게 되었지만 울총이 되고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들이 얼마나 나에게 힘을 주었는지 실감하고 있다.
요즘은 함께 살고 있지만 식사를 같이하거나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 ‘식구(食口)’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한다. 가족구성원이 모두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같이 살아도 각자 따로 식사를 해야 하는 각박한 현실 탓이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혼밥’과 ‘혼술’도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추세와 혼자만의 자유에 대한 예찬도 한 몫 했겠지만 그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가족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이야기와 고민,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잦은 야근과 휴일 근무 등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 회사도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간선택제, 탄력근무제, 원격근무제 등 다양한 유형의 유연근무제를 통해 워라밸 기업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평일 오후 6시 정시 퇴근과 함께 가족과의 저녁식사로 늘어난 대화와 휴식이 식구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음식은 더불어 먹어야 제격이다. 식사하는 것이 제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나눠 먹어야 한다”고 했다. 비싼 음식을 먹고 유명한 맛집에 가는 그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식사라도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전기를 만들어 내는 일을 잠시라도 쉴 수 없기에 발전소 직원들은 추석 연휴에도 일을 한다. 발전회사에 몸 닫고 처음 맞이하는 이번 추석은 발전소 현장 근무자들을 격려하며 보낼 듯하다. 온 국민이 식구들과 함께하는 추석 밥상으로 그간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