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외교 슈퍼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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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1946년 1월10일, 영국 런던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독일군의 공습으로 상당수 건물들이 파괴된 가운데 식량배급소에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클러멘트 리처드 애틀리 영국 총리를 비롯한 51개국 대표 224명이 모여들었다. 흔히 ‘외교의 슈퍼볼’로 불리는 유엔총회가 처음으로 막을 올린 순간이다. 전후 정의와 자유·평화의 새 시대에 대한 갈망이 컸지만 회의는 순탄치 않았다. 의장 선출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면서 결국 표결을 거쳐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이 민 벨기에 출신의 폴 앙리 스파크가 의장에 선출됐다.


매년 개최되는 유엔 총회에서는 수많은 결의안들이 채택된다. 1948년 12월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됐다. 인권존중을 원칙으로 하는 유엔헌장의 취지에 따라 모든 나라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기준으로서의 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이 3차 총회는 우리나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는 결의안이 압도적 표 차이로 통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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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의 하이라이트인 ‘일반토의(General Debate)’에서는 각국 고위급 인사들이 나서 연설을 한다. 첫 번째 연사는 관례에 따라 브라질이 맡는다. 이는 1955년 제10차 총회에서 누구도 나서지 않자 브라질이 첫 연설을 자원하면서 관행으로 굳어졌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다른 관계로 이 연설에서는 갖가지 해프닝이 발생한다. 1974년 11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나는 올리브 가지와 총을 함께 가져왔다. 내 손이 올리브 가지를 떨어뜨리지 않게 하라”며 이스라엘의 불법점령 행위를 꾸짖었다. 2006년에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내 앞 테이블에서 유황불 냄새가 난다”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북한 핵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제73차 유엔총회가 최근 개막됐다. 이번 총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연설도 예정돼 있다. 모쪼록 이번 총회는 과거처럼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가는 험악한 자리가 아니라 평화를 향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무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철수 논설실장

오철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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