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에는 어르신을 댁으로 모셔야 하는데….”
지난 13일 오후 서울시 관악구 관악산 중턱. 함명호 서울 관악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7월31일 자살을 암시한 80대 노인의 실종 신고가 접수된 후 수사팀은 두 달째 산을 탔다. 그간 수색에 투입된 인원은 80여명. 실종수사팀 경찰 6명과 방범순찰대 1개 중대, 소방서 산악구조대가 관악산을 훑었다.
이날 오후 늦게 사무실로 복귀한 실종수사팀은 다시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실종수사팀에는 ‘자살 의심’을 비롯해 청소년 ‘가출’까지 각종 실종 신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함 팀장은 “관악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신종 신고가 접수된다”며 “1년 기준 1,500여건의 신고가 접수돼 95% 이상 찾으려면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만 전국적으로 경찰에 접수된 실종 신고는 10만4,000여건. 하루 평균 284건꼴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사라진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는 서울 관악경찰서 실종수사팀 경찰들의 일과를 3일간 동행 취재했다.
◇뱀에 물려 죽기도…경찰견 수난시대=“수풀이 우거져 시야가 제한돼요. 후각이 발달한 경찰견이 제격이죠.” 13일 오후2시께 서울대 관악캠퍼스 천문대 인근 산 중턱에서 경찰견 ‘마리’가 80대 노인 실종자를 찾기 위해 수풀을 헤쳐나갔다. 경찰견은 2012년 처음 도입된 후에 전남 강진의 실종 여고생을 발견하는 등 뛰어난 수색 능력을 뽐내고 있다. 다만 험한 지형에 주로 투입되다 불상사를 겪기도 한다. 지난달 28일에는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견 래리가 충북 음성군의 한 산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독사에 물려 숨지기도 했다.
관악서 실종수사팀의 노력 끝에 실종된 80대 노인은 이튿날인 14일 오후 관악산 일대에서 발견됐다. 다만 주검으로 돌아와 실종수사팀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함 팀장은 “7월23일 어르신이 실종됐는데 아들이 일주일 뒤에야 신고해 아쉽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성적 압박에… 여중생 가출=“학교에서 조퇴했다는 딸애가 집에 없어요.” 18일 오전9시께 실종수사팀으로 A(13)양의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부모의 성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한 것이다. 경찰은 서둘러 지인 탐문과 휴대폰 위치추적, 폐쇄회로(CC)TV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전화를 50여통 가까이 돌린 뒤에야 A양 상담선생님의 결정적인 제보가 잡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팅으로 알게 된 호남지역에 거주 중인 또래와 자주 연락한 사실을 알아낸 것. 위치추적 결과 드러난 A양의 동선 역시 호남 방향이었다. 동시에 경찰은 CCTV 중앙관제실에서 A양이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며 집을 나서는 모습을 캡처해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등록해 호남지역 경찰과 공조에 나섰다. 하루 종일 A양 추적에 매달린 결과 실종 접수 10시간 만인 이날 오후7시께 호남지역의 한 청소년쉼터에서 A양을 찾아냈다. 함 팀장은 “여중생 가출 건이라 혹여나 하는 마음에 가슴 졸였는데 찾게 돼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번번이 낙방해 조용히 시험 보려 했는데” …사라진 취준생=“간밤에 독서실에 나갔던 딸이 여태 연락이 끊겼어요.” 15일 오전10시께 실종수사팀의 수화기 너머로 한 중년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업준비생인 딸 A(25)씨가 지난밤 이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는 것. 위치 추적 결과 A씨의 휴대폰은 15일 오전7시께 강남 일대 기지국에 마지막 신호를 남기고 꺼졌다. 경찰은 즉각 현장 탐문에 들어갔다. 우선 독서실을 찾아 CCTV를 살폈다. A씨가 15일 자정에 독서실에 들어와 1시간여 후 나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그러던 중 오전11시께 A씨의 휴대폰이 켜졌다는 신호가 뜨고 머잖아 A씨가 실종수사팀에 연락을 취했다. A씨는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시험을 치르느라 전화를 꺼뒀다”고 설명했다. 박상호 관악경찰서 실종수사팀 수사관은 “연이어 입사 시험에 낙방하니 민망해서 조용히 시험을 치른 것 같다”며 “그래도 무사해 다행이다”라고 했다.
◇“신원조회만 돼도 목숨 살릴 수 있는데”...제도 개선 절실=“자살의심 신고 중 늦은 밤 SNS를 통해 ‘나 죽고 싶어’라는 글이 올라올 때 가장 난감해요. 저희는 게시물과 ID만 볼 수 있거든요.” 15일 새벽 기자와 실종수사 현장의 고충을 얘기하다 함 팀장이 하소연했다. 성인의 경우 SNS·포털 업체를 통한 신원확인은 영장이 있는 경우만 가능하다. 반면 아동·치매노인·장애인의 경우 공문만으로 신원조회를 할 수 있다. 정작 문제는 대부분 자살의심 건이 성인 계층에서 발생하는 현실이다. 실제 지난해 10만4,000건의 실종사건 가운데 성인이 6만5,000건이나 차지해 60% 이상을 차지했다.
함 팀장은 “자살은 형법상 범죄가 아니라 영장 발급이 불가능하다”며 “신원조회만 돼도 살릴 목숨을 제도가 죽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생존반응’을 살피기 위해 실종자의 교통카드 내역을 확보하는 일도 문제다. 교통카드 업체에 보내야 할 서류만 여섯 가지에 달해 문건 작성에만 반나절이나 소요된다. 생명을 놓고 촌각을 다투는 게 실종사건이지만 정작 문서처리에만 4~5시간이 걸려 ‘수색 골든타임’을 놓칠 수도 있는 셈이다. 함 팀장은 “복잡한 행정 절차가 초동수사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했다.
16일 새벽4시께 실종수사팀 사무실이 별안간 침묵에 잠겼다. 밤새 소란스럽게 사건·사고 소식을 알려오던 무전기도 잠잠해졌다. 이따금 들려오는 실종수사팀 경찰들의 타자 소리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다만 그들 옆으로 서울경찰청에서 받은 ‘2018년 2분기 우수 수사팀’이라는 상패가 훈장처럼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