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기가 맞는 걸까.” 요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장소들의 공통점은 찾는 이가 이러한 의문을 품게 된다는 점이다. 분명히 한국인임에도 대다수 사람들이 마치 외국인 관광객처럼 스마트폰 지도에 의지해 사방을 두리번두리번하며 발을 내디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모두 하나같이 오래된 막걸리집과 한옥이 뒤섞인 거리, 기름때 묻은 철공소나 창고처럼 번화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풍경에 묻히는 작은 간판을 겨우 달고 있거나 아예 간판이 없는 곳도 흔하다. 익선동과 성수동·을지로3가·한강로에 이르는 신흥 핫플레이스. 이들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뜨거운 걸까.
◇저렴한 임대료와 접근성, 독특한 매력 3박자 갖춘 ‘요즘 핫플’=저렴한 임대료와 접근성, 그 지역만의 독특한 매력은 이들 신흥 핫플레이스의 공통분모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본력이 부족한 젊은 층이 실험적인 가게를 열기에 좋은 조건이다. 낡은 거리와 묘하게 어우러지는 요즘 감성, 거기에 편리한 접근성까지 갖춰 조용하지만 강한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이 세상 힙이 아니다’라는 찬사와 함께 젊은 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을지로3가는 예로부터 인쇄소나 철공소 등이 모여 있던 도심 속 작은 공장지대였다. 이런 곳에 알록달록한 칵테일, 와인, 수제맥주 등을 판매하는 개성 넘치는 가게가 들어선 것은 2~3년이 채 안 된다. 저렴한 임대료와 함께 주변에서 다양한 재료를 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나 공방이 먼저 관심을 보였다. 을지로 핫플레이스에 유독 ‘작업실 겸’이라는 설명이 붙는 까닭이다. 을지로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호텔수선화’ 역시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가 작업실 겸 카페로 만든 공간이다. 기존 상권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젊은 층의 창업이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높은 접근성은 고객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요소다. 인근에 직장이 있어 퇴근 후 가끔 을지로를 방문하는 김지연(31)씨는 “가까워서 점심이나 저녁에 종종 을지로3가를 찾는다”며 “다른 곳과 다른 을지로만의 분위기가 있어 새롭고 매력적이다. 주인들이 다 감각이 있어 인테리어나 내오는 음식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신흥 핫플레이스들도 을지로와 비슷한 이유와 유사한 과정을 통해 인스타의 성지로 떠올랐다. 창고와 자동차공업소, 수제화 골목 등이 있던 성수동은 ‘대림창고’가 카페로 개조되면서 ‘카페 거리’로 불릴 만큼 많은 카페와 맛집이 들어섰다. 지난 1970년대에는 정미소로, 이후에는 창고로 사용됐던 낡은 건물과 상호를 그대로 유지한 대림창고는 특유의 ‘인더스트리얼’한 분위기 덕분에 패션쇼 무대나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삼각지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이제 막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한 한강로 핫플레이스는 인근에 아모레퍼시픽 사옥이 완공된 시점을 전후로 생겨났다. 우선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하에 맛집과 멋진 숍들이 즐비하다. 핀란드 콘셉트 카페 ‘카페알토 바이 밀도’와 북유럽 관련 도서와 문구류 등을 판매하는 ‘타스크 오피치나’ 등이다. 인근에도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겸 갤러리 ‘인바이티드’와 낮에는 카페, 밤에는 만두와 마라전골 등을 판매하는 주점으로 변신하는 ‘커피반점’ 등 재미있는 가게를 만날 수 있다.
◇한식보다 양식 매출이 높은 한옥마을…달라지는 상권지도=기존 상권에 새로운 상권이 더해지면서 이들 지역의 상권지도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익선동의 경우 한옥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장소지만 최근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한식보다 양식 업종의 매출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한옥에서 양식을 즐길 수 있다는 신선함이 젊은 층의 소비심리를 자극하는데다 인근에 외국인 관광객 숙박시설이 많아 외국인 고객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가정보연구소의 상권분석 결과 익선동 한식 업종의 월평균 매출은 3,700만~4,600만원 선이었지만 양식 업종의 월평균 매출은 7,400만~7,900만원으로 최대 4,000만원 가까이 높았다.
을지로의 경우 상인들의 연령대가 한두 해 사이 절반으로 낮아졌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과거에는 50~60대 상인이 대부분이었고 70대 자영업자도 꽤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을지로 인근 창업자 동향을 분석한 결과 30대가 크게 늘어났다. 사무실을 빌려 작업공간으로 사용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경우 20대까지도 연령이 내려간다”고 전했다.
이제 막 떠오른 상권인 만큼 새로운 창업 희망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을지로의 한 공인중개사무소는 “사무실로 쓸 만한 곳도 자리가 없고 카페나 술집은 더더욱 물건이 귀하다”며 “며칠 전에도 카페를 하겠다고 두세 사람이 전화를 했다. 가게를 열려면 빨리 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익선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한옥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 값이 많이 올랐다”며 “지난해에는 보증금 4,000만~5,000만원 하던 게 요새는 7,000만~8,000만 원까지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예 건물을 사서 임대를 놓으려는 투자자들도 있다. 또 낡은 건물을 구매해도 재건축하거나 전면 리모델링을 하는 대신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만 손보는 것이 추세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