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고전통해 세상읽기] 損益(손익)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현재는 과거 그대로 답습 안해

세태에 맞도록 덜거나 더해야

명절·제사도 상호간 소통 거쳐

화합의 방향으로 기준 세울 때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요즘 명절이 되면 성 역할의 불평등이 더 큰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날 전통의 이름으로 당연시되던 삶의 관행이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제사를 지내느냐를 두고 논란이 생긴다. 현재 60대 이후는 제사를 당연히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젊은 세대만 해도 내가 왜 본 적도 없는 조상을 제사 지내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설혹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아들만이 지내는 관행은 그리 머지않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면 아들이 없고 딸만 있는 집안이 적지 않다.

또 제사를 지낸다고 하더라도 제사 음식을 옛날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 마련해야 하는지도 논란이 된다. 전통으로 모든 게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제사 음식을 가급적 바꾸지 말고 그대로 지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먹지도 않는 음식을 만드느니 산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간편하게 바꾸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누가 명절에 일을 하느냐를 두고 가족이 서로 불편해하기도 한다. 며느리가 당연히 일을 하는 것이지만 모두 존귀한 사람인데 명절에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한다는 게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절이 끝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랜만에 만나 가족과 친척이 서로 즐거워야 할 시간에 오히려 얼굴을 붉히는 집안이 적지 않다.


제사는 유가 문화의 전통으로 간주된다. 유가의 문헌에서 사람이 죽으면 막연히 하늘로 돌아간다는 귀천(歸天) 의식이 있거나 영혼은 하늘로, 육신은 땅으로 간다는 사고가 나온다. 즉 유가는 기독교의 영생과 불교의 윤회처럼 사후 세계를 뚜렷하고 확실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사후에 생전의 행적에 따라 심판을 받아 간다는 천당과 지옥의 이야기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유가는 사후 세계를 실체로 명료하게 다루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완전히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니 사후 세계는 구체화시킬 수는 없지만 혼백이 그냥 어떤 식으로 있다고 믿었다. 공자는 사후 세계가 복잡하게 논의해도 확정 지을 수 없어 쓸데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로 간주했다.

관련기사



2915A27세상읽기


이 때문에 조상이 사후에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왜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사후 세계는 잘 몰라도 후손들이 조상을 기념해서 모이면 서로 화합할 수 있으니 좋다는 효과론을 내세웠다. 또는 사람이 죽으면 개개인에 따라 기가 흩어지는 속도가 다르다고 보았다. 나라를 세운 영웅은 기가 아주 느리게 흩어지고 보통 사람은 그보다 빨리 기가 흩어진다. 기가 흩어진다고 해도 완전히 소멸하지 않으므로 후손이 제사를 지내면 조상과 감응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가는 사후 세계를 반드시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대한 이론 문제가 아니라 조상은 사후에 어떤 식으로든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의 문제로 보았다.

현대는 유가가 사회의 지배 질서의 원리로 작동하던 시대 상황과 다르다. 이에 조상의 존재에 대한 신념도 바뀌고 장례와 제사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공자는 현재의 삶의 제도가 과거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이유로 손익(損益)의 관점을 제시했다. 현재는 과거의 삶의 제도를 액면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덜어내는 손(損)과 덧보태는 익(益)의 결과이다. 공자는 실제로 검소하다는 검(儉)을 기준으로 머리에 쓰는 관을 바꾸는 것에 동의를 표시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제사 문화가 세대의 갈등이 아니라 화합을 기준으로 바뀔 수 있다. 향을 사르고 술을 따르면 그에 감응해 조상의 혼과 백이 제사의 공간으로 강림, 제사에 참여한 후손과 만나게 된다. 음식은 조상과 후손이 만나서 먹고 마시는 보조 장치다. 따라서 조상이 좋아하는 음식과 후손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최소화시킬 수 있다. 간혹 인터넷에서 과일과 밥 위주의 간단한 제사상이 새로운 제사 문화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오늘날의 제사 문화는 음식을 손(損)하고 가족의 화합을 익(益)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명절이 제사에서 무엇을 뺄지, 무엇을 더할지 자유롭게 토론하는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제사 문화가 조금 빨리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