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 외로움과 싸우는 혁신도시 …“주말에 TV만”, “아내가 친구를 찾아요”





지난 19일 진주혁신도시에 위치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앞 상가 건물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진주=정순구기자지난 19일 진주혁신도시에 위치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앞 상가 건물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진주=정순구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혁신도시 시즌2’를 예고했습니다. 아직 수도권에 남아있는 공공기관들을 내려보내겠다는 것인데요. 이전 5년 차를 맞은 1기 혁신도시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우려가 앞섰습니다. 금요일 밤만 되면 전세버스 수십 여대가 서울로 줄을 지어 가는 모습, 잦은 서울 출장으로 열차와 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야기가 소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공공기관의 맏형 격인 한국전력공사가 내려간 나주, LH가 내려간 진주 등을 직접 찾아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이 30개 공공기관 임직원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서울경제신문이 30개 공공기관 임직원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외로움과 싸우는 청년들=세종특별자치시에서 자동차를 타고 호남고속도로를 달리길 두 시간 남짓,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10여 분 더 들어가다 보면 우뚝 솟은 한국전력공사의 본사가 혁신도시임을 알립니다. 한전을 중심으로 15개의 공공기관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형성된 상업지구의 건물이 혁신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요. 커피를 마시기 위해 혁신도시 중심부로 들어가보니 커다란 외형과 달리 추석 연휴의 시작을 이틀 앞뒀음에도 적막함과 고요함이 가득했습니다. 1층을 제외한 상가 건물 유리창에는 ‘임대’ 표시판이 덕지덕지… 한전이 내려와 다른 도시들로부터 부러움을 산 나주혁신도시의 실상이었습니다. 물론 새로 지은 아파트들은 정갈해 보였고 시끄러운 서울 도심과 비교해보면 어린 자녀를 키우기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요.


여러 공공기관 종사자를 만났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혼으로 혼자 내려왔거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부부들은 ‘외로움’을 호소했습니다. 나주의 한 공공기관 종사자는 “제 아내는 서울에 있을 때 백화점 내에서 진행하는 값싼 문화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며 “혁신도시 내에는 그런 시설 자체가 없다 보니 아내가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나주에는 백화점이 없고, 대형 쇼핑몰도 없습니다. 다른 기관의 관계자도 “아내가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같이 내려왔는데 너무나 심심해 했다”며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우울하다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나주 혁신도시의 상권 곳곳을 돌아다녀 보니 밥집과 카페, 노래방 등 유흥주점뿐이었고 생활편의 시설 등은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입사 2년차인 한 신입사원은 “주말에 할 것이라곤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뿐”이라며 “좀 더 다양한 문화시설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털어놨습니다. 다행인 것은 나주 혁신도시에도 영화관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영화관조차 없는 진주 혁신도시 직원들은 더욱 불만을 나타냈습니다. 진주 공공기관 관계자는 “영화관은 물론이고 도서관 등도 없다”며 “인근 지역 축제나 관광 명소를 찾지 않는 이상 집 근처에서 즐길 거리는 전무하다”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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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대중교통…종합병원 없어 ‘응급실’ 찾아 대도시로=대중교통도 턱없이 부족했는데요. 그런 탓에 나주에 위치한 대다수 공공기관의 주차장은 버스로 두세 정거장 거리임에도 출퇴근을 위해 끌고 온 차들로 빽빽했습니다. 진주와 전주 역시 마찬가지였는데요. 퇴근길에 만난 진주의 공공기관 관계자는 “버스는 거의 다니지 않고 오가는 택시마저 드문 상황”이라며 “차가 없이는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혁신도시 내에서뿐만 아니라 혁신도시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흘러나왔습니다. 나주 공공기관 관계자는 “나주까지 KTX가 다니지만 역에서 혁신도시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턱없이 부족해 어느 때는 20분도 넘게 기다렸다”면서 “요새는 광주 KTX 역에 먼저 내려 만원을 주고 나주 혁신도시로 들어오고는 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종합병원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거셌습니다. 물론 나주와 진주 등은 차로 30여 분 가면 인접 대도시에 대학병원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남편이 출장 간 사이, 새벽에 아픈 아이를 아내 혼자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나주에는 여성을 위한 피부과와 치과·소아과 등 소규모 병·의원은 곳곳에 있었지만 응급환자를 수용할 만한 대형 의료기관은 보이지 않았는데요.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나주 공공기관 관계자는 “전남대 병원이 30분 내에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갑자기 아프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며 “종합병원이 혁신도시 내에 들어서야 제가 출장을 갔을 때도 새벽에 아이가 아프면 아내 혼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전주의 공공기관 관계자는 “종합병원을 가려면 구도심까지 가야 하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가느라 불편이 가중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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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찾아 인접 대도시로…그러니 부동산은 찔끔=40대 차장, 50대 부장으로 대표되는 소위 ‘아재’ 종사자들은 회사가 제공한 숙소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녀들 교육을 위해 혼자만 지방으로 내려왔기 때문이죠. 혁신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교육 환경이 개선 돼야 한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의 사례를 보죠. 승진을 노리는 한 공공기관 소속의 A씨는 고민 끝에 수도권에 위치한 지역사무소에서 나주 본사 행을 결정했습니다. 부인과 각각 중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과 함께 나주에 터를 잡고 본사 생활에도 적응할 무렵 그의 고민은 곧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될 아들에게서 시작됐습니다. 자사고나 특목고를 보내고 싶지만 혁신도시 내에는 선택지가 일반고 한 개뿐이었고 결국 나주 혁신도시와 20㎞ 정도 떨어진 광주광역시로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광주에는 서울권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군이 있어 광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혁신도시를 관활하는 지자체 관계자는 “서울과 비교하면 학원도 그렇고 학교 선생님들의 능력 등에 의구심을 보내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혁신도시 집값은 상승폭이 더딥니다. 경남 진주혁신도시 A7블록에 위치한 ‘대방노블랜드’. 2016년 분양된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84㎡로 지난해 3억8,000만원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4,000만~5,000만원가량 떨어졌습니다. 한국전력공사 바로 옆에 위치한 ‘빛가람우미린’ 전용면적 76㎡는 올해 초 2억9,000만원까지 거래되던 가격이 최근 들어 3,000만~4,000만원가량 하락했습니다. 2013년 분양 당시 가격이 1억9,000만원 후반대였음을 고려하면 5년 동안 매매가격은 5,000만원 정도 오르는 데 그친 셈입니다. 반면 인근 광주광역시의 봉선동 32평형 아파트는 무려 3억이 올랐다고 하네요. 공공기관 관계자는 “봉선동에선 대치동에서 모셔온 학원 선생들이 있다”며 “교육 수요로 인해 광주 집값이 오르다보니 나주 혁신도시 집값 상승률은 더딘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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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2기 혁신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찬성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서울경제신문이 공공기관 종사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됐을까’라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23.2%(114명)이었습니다다. ‘약간 그렇다’고 대답한 임직원은 37.7%(185명)로 전체 응답자의 60.9%가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편이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답변은 각각 11.6%와 5.3%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는데요.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도 2기 혁신도시를 찬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그렇다면 정부도 책임감을 가져야 할 듯합니다. 2기 혁신도시를 급하게 추진하기에 앞서 교육과 교통, 생활 인프라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정부가 내놔야 하지 않을까요?

/세종=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박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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