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혁명을 이끄는 테슬라와 우주탐사 기업인 스페이스X 등을 앞세워 혁신의 대명사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꼽히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그가 특유의 즉흥적 행동이 부른 사기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겸임하던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머스크 CEO는 회사와 함께 4,000만달러의 벌금을 납부하면서 자신의 ‘악동적’ 기행을 감독할 독립적 이사진의 선임도 수용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8월 느닷없이 테슬라를 상장 폐지하겠다는 트윗을 날려 투자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주가를 요동치게 한 머스크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다고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SEC가 머스크를 증권 사기 혐의로 고소하자 생방송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며 ‘마이웨이’를 고집했던 머스크조차 이틀 만에 백기를 든 것이다. 그는 SEC가 투자자 혼동 등의 범법 행위를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 대신 회사와 각각 2,000만달러의 벌금을 내는 것은 물론 45일 내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하고 향후 3년간 다시 의장으로 선출될 수 없다는 조항에 합의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스티븐 페이킨 SEC 집행담당 국장은 “합의 결과 머스크는 이제 더는 테슬라 의장이 아니다”라며 “머스크가 투자자와 소통하는 것을 감독하는 의무도 부과된다”고 말했다. SEC는 머스크가 CEO로 계속 테슬라의 경영을 주도하는 만큼 시어머니 역할을 할 독립 이사진 2명을 선임하도록 해 예측을 불허하는 머스크의 언행을 견제하고 시장 교란 행위를 방지하도록 했다.
머스크는 대중적 전기차 ‘모델3’와 재활용 로켓을 쓰는 스페이스X, 초고속 미래형 터널 굴착 등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며 21세기 최고의 혁신가로 불려왔다.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로 꼽히는 것도 이 같은 혁신적 행보 덕분이다. 하지만 경영 일선에서는 숱한 기행과 감정적 의사결정 때문에 기업 CEO로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아왔다. 분신과 같은 테슬라의 경영에 커다란 제약을 받게 된 이번 합의도 머스크 CEO가 모델3의 성공적 안착에 지속적으로 회의를 보여온 공매도 세력들에 본때를 보여주려다 제 발등을 찍은 결과라는 평가다.
그는 8월 초순 테슬라 주식을 주당 420달러에 모두 매입해 비상장사로 전환하겠다는 폭탄 트윗을 날리며 “자금도 다 준비됐다”고 기염을 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가 ‘자금줄’인 사우디 국부펀드와 구두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믿고 그런 트윗을 날렸다”고 전했지만 충분한 준비도 없이 공시가 아닌 트윗으로 중대한 기업 정보를 알린 것은 머스크 CEO가 테슬라 주가를 떨어뜨리며 자신을 공격해온 공매도 세력들을 한 방 먹일 심산이었다는 것이 월가의 중론이었다.
결국 천문학적 자금 마련에 실패한 머스크는 17일 만에 테슬라의 상장 폐지 계획을 철회했지만 이미 조사가 시작된 SEC의 칼날은 피해가지 못했다. SEC는 머스크의 상장 폐지 트윗이 투자자를 기만했다고 보고 사기로 27일 연방지법에 고소했고 이에 테슬라 주가는 다음 날 13.9%나 폭락했다. 심지어 생방송에 나가 마리화나를 피우며 스페이스X와 미 공군 간의 계약을 위태롭게 했고 CEO로의 실망스러운 사생활과 돌출 행동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뺀 주요 임원들은 대거 회사를 떠났다. 궁지에 몰리면서 자존심을 굽히지 않던 머스크에게 SEC의 고소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어퍼컷이 된 셈이다.
월가 관계자들은 SEC의 이번 조치로 길들여지지 않던 CEO인 머스크에게 어느 정도 고삐가 채워졌다고 분석하며 “테슬라 주식이 회사 펀더멘털에 초점을 두고 가치를 평가받게 돼 주주들에게는 훌륭한 결의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